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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8절)


너희 자신을 위하여 울라, 그리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제 곧 그들에게 큰 환란이 닥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29절)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0절)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을 당하였습니다. 모두가 도망하여 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밴 여인들, 어린아이를 젖 먹이는 여인들은 빨리 도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망하지 못한 자들은 잡혀서 처참한 살해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못난 여인들, 젖 먹이는 아이가 없는 여인들이 차라리 복 받은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산에 숨은 사람들이 산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덮으라, 우리 위에 무너지라, 저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게 하라' 얼마나 처참하고 급박한 상황이었겠습니까?


그렇게 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란을 당할 것이니 가련하고 나약한 신세인 너희 자신을 위하여, 도망하여 숨을 수도 없는 신세가 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31절)


푸른 나무, 즉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아무 죄 없는 예수님에게도 이렇게 하거든, 하물며 마른 나무와 같은 너희들을 향하여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언덕 길에서, 밤새 채찍을 맞고 피를 흘려서 아무런 기력이 없는, 혼자 힘으로는 그 십자가를 지고 갈 수도 없었던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울고 있는 여인들을 향하여 불쌍한 마음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십자가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예수님처럼, 이제 곧 처참하게 멸망을 당할 예루살렘,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될 예루살렘 성전, 무자비한 살륙을 당하게 될 불쌍한 백성들, 그들을 향하여 가지신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백성들, 곧 그들에게 닥칠 환란에 대하여, 그들이 당할 죽음과 심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지금 십자가에 달리시는 예수님 때문에 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지만 다시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입니다.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악한 권세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실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다 이루시기 위하여 사명의 길을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있지만 최후의 승리를 위하여 가시는 길입니다. 하지만 멸망의 길을 향하여 가고 있는 백성들, 심판을 당하게 될 백성들, 너희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희의 미래를 위하여 울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안다고 하지만 정말로 아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어디서 들었는지, 그냥 이래도 괜찮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 때문에, 관계 때문에, 억울함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우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신의 영혼 때문에, 메말라 가는 신앙 때문에, 의를 향한 목마름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간절함 때문에 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재를 위하여는 울지만 미래를 위하여 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하여는 울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억울함 때문에는 울지만, 지금도 주리고 고통을 당하는 저들을 위하여는 울음이 잘 나지를 않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울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하여 울고 있습니까?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순간에도 울고 있는 가여운 여인들을 생각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가여운 영혼들, 죽음의 길을 향하여, 멸망의 길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로 모르고 있는 무지한 영혼들, 자신들에게 닥칠 무서운 심판에 대하여 둔감한 영혼들, 그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갇혀서, 자신의 이론과 지식과 경험에 갇혀서, 어두움이 덮고 있는지도 모르고, 소경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똑똑한 줄 알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줄로 알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 '못 믿겠다' 말하는 것이 솔직함이요 용기인 줄 아는 안타까운 영혼들, 그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지금도 먹을 것이 없어,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람들, 죄없이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들을 가슴에 품고 울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울지 않는 나 자신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어느덧 울음이 없어진 나 자신, 메말라 버린 나 자신, 돌과 같이 굳어져 버린 나 자신, 애통함이 없어진 나 자신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불쌍한 영혼들, 안타까운 영혼들,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고서도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는, 바싹 마른 풀과 같이 되어 버린 나 자신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울게 합니까? 


울 일을 위하여 웁시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