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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마지막 일곱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은 "나는 포도나무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요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 15:1) 


성경에 보면 좋지 않은 포도나무도 있습니다. 농부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포도를 맺었다고 했습니다(사 5:2). 좋은 포도나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떤 열매, 어떤 포도를 맺느냐에 있습니다. 들포도, 먹지 못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좋은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위 그림과 같이 먹음직스러운 최상품의 포도열매를 맺는 것이 좋은 포도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최극상품의 포도나무,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 나무를 가꾸는 분은 최고의 기술을 가진 베테랑 농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나무는 최극상품의 "참포도나무"입니다.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당연히 최고의 좋은 포도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지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가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저 나무에 잘 붙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나무에 잘 붙어 있으면 좋은 열매를 맺고, 붙어 있지 않으면 곧 말라 버립니다.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가지들은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주워다가 불이나 때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바로 그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하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왜 붙어 있어야 합니까?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버지 하나님은 농부, 예수님은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입니다. '인격적 연합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인격적 연합 관계와 같이 예수님과 우리도 그래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예수님과의 인격적 연합 관계입니다. 하나가 되는 관계입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성도로서, 참그리스도인으로서, 참제자로서, 참하나님의 자녀로서,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먼저 이 연합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예수님과 연합의 관계가 되어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고 우리는 비로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


열매가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들이 그런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과의 이런 연합의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다음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가지는 그저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열매가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에고에이미' 선언은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처음 행하셨던 표적과 연결이 됩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명하셨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가져다 채워라. 물을 다 채우자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떠서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인들은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그것을 받아서 마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와! 처음것보다 훨씬 맛있는 포도주인데...'


물을 순간적으로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을까요? 항아리에 물을 붓는 순간? 항아리에 머무는 동안? 물을 떠서 사람들에게 가지고 가는 동안? 아니면 사람들이 마시기 직전? 언제였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물이 사람들이 마시는 순간에는 맛있는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물이었는데,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지만, 포도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키는대로 했더니, 하라시는대로 순종했더니,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그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젯밤일지, 오늘일지, 내일아침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확한 시간을 집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보면 압니다. 나중에 보면 보입니다. 분명히 변한 것이 보입니다. 열매가 맺혀진 것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시키는대로 하면, 하라시는대로 순종하면, 다시 말해, 포도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지만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달라져가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많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것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립니다. 열매는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삶을 통해 열매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가지가 스스로 그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나무가 가지를 통해 열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께서 열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매가,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포도나무이다" 예수님이 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선언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무에, 하나님께서 친히 열매를 나타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지인 너희들은 이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친히 열매를 맺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연합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24시간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앞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앞에 가시는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참제자가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입니다. 


"에고에이미" "나는 참포도나무이다"  


그리고 


"너희는 가지다"


이 마지막 선언은 우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