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초등학교 시절에 교회 친구들과 함께 산상수훈(마 5-7장)의 말씀을 모두 외운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그때 그 시절, 머리가 팽팽 돌던 그 시절에 말입니다. 선생님이 외우라니까 뭔 말인지도 모르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산상수훈의 이런 말씀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지킬 수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말이 안 된다고,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냐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여러분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지킬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건 꼭 이렇게 지키라고 하신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마 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을 묵상하면서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예수님이 당하신 세 가지 시험이 저에게도 수시로 오는 것입니다. 이 놈의 마귀는 어떻게 그렇게도 저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지 조금만 틈을 보이면 그대로 비집고 들어와 시험합니다. 너 배고프잖아, 너 이거 필요하잖아, 너 이거 갖고 싶잖아, 너도 그거 해 보고 싶잖아, 너도 거기 가 보고 싶잖아......, 목사는 뭐 사람 아니냐? 괜찮아..... 그게 죄냐? 사십일 금식하느라 고생했잖아..., 너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이제 이 정도는 괜찮아, 너도 좀 이제 여유를 가져, 인생을 즐길줄도 알아야지..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1장과 2장에서 묵상한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이요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사람에게서 세례를 받으시다니요.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어떤 죄를 씻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 분께서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몰라 보았지만 세례 요한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류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14절) 예수님께서 "이제 허락하..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세상에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까?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인류 역사에 일어났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였는데, 온 이스라엘 민족이 조상대대로 그토록 사모하며 기다리던 왕이었는데, 정작 그 왕이 오셨을 때 사람들이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결국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습니다. 진짜 왕을 말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십자가에 죽인 죄목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아니... 진짜 왕인데, 그 왕을 몰라보고..., 감히 왕이라고 한다고, 니가 어떻게 왕이냐고, 조롱하고 희롱하고 모욕하며, 보란듯이 십자가에 그 죄패를 붙이고 ..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인류 역사에 일어난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성육신하신 사건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됩니까? 똑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어릴 때부터 보아온 친척들과 고향 사람들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형제요 친척이지, 그저 착하고 부지런한 목수이지, 하나님일 수는 없었습니다. 늘 자기들과 함께 생활했던 예수님이 하나님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 그들이 생각했던 하나님, 그들이 배..
(시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의 마지막 150편입니다. 1월 1일에 시편 1편 묵상을 시작하여 오늘로 150일이 되었습니다. 언제 가는가 싶었는데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시편을 통하여 새롭게 받은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모든 인생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일까? 모든 것을 다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해야 하는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 이 세상을 떠나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 앞에 서서 처음으로 해야 할 그 한 가지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이 한 마디 아닐까 싶습니다. 시편의 마지막 결론 한 마디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정말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하나를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였고, 그동안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호흡..
(시 149:9)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만 주신 영광입니다. 오늘 시편은 두 가지 영광을 주셨다고 노래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5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같지만, 세상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세상에는 다른 신, 잘못된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과 기독교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찬양은 커녕 저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
(시 148:14)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있으라 하신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그대로그냥 그대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만드신 그대로인데정하신 그대로인데 그 모습 그대로가 영광입니다 어떤 만물과 비교할 수 없는 나 나도 이 모습 이대로그냥 이 자리 이대로 하나님의 영광이면 좋겠습니다 그냥 이대로 영광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만물의 찬양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백성의 찬양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어찌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가까이 있지 않는 자가 어찌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시편의 결론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