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잠 1:24)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경향이다. 무엇을 보든 자기 안에 들어올 때는 원래 가진 생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쉽게 하는 말로, 무엇이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다. 자기가 쓴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것을 보았는데 해석과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다. 성향과 기질에 따라 다르고, 속한 그룹의 노선이나 신념에 따라 다르다. 이해관계에 따라, 유익여부에 따라 같은 것이 다르게 해석된다. 같이 사는 부부에게 대개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같은 확증편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성경을 보는데도 나타..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잠 1:22) 어리석은 자들, 거만한 자들, 미련한 자들, 그들은 결코 자신이 그렇다 생각하지 않는다. 어리석음을 좋아한다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거만을 기뻐하고 지식을 미워한다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하나가 있다. 듣지 않는 것이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와 다른 생각, 반대되는 의견, 지적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예리한 판단력을 가졌고, 사람의 심리와 상황을 꿰뚫어 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옳다고 여긴다. 문제는 자신이 보고 판..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잠 1:19) 분별하지 못하고 쉽게 넘어가는 주된 원인이 탐심이다. 탐심이 눈과 귀를 가린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듣게 한다. 탐심은 마음에 한 번 들어오면 누룩처럼 부푼다. 모든 생각과 마음이 그곳을 향하게 한다. 결국 판단력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는”(1:17) 어리석은 일을 하고 만다. 누가 봐도 아닌데 자신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 채 혼자 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져간다. 아무리 아니라 하여도 들리지 않는다. 남들이 답답하게 여겨진다. 한 두 번의 실패는 필요한 과정 쯤으로 여긴다. 탐심은 대인관계를 허문다. 자신의 이익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목적을 위하..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잠 1:11) 분별해야 하는 악한 자의 특징 하나가 ‘은밀함’이다. 숨긴 의도가 있을 때, 감추어야 하는 정당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 때, 중요한 일인양 은밀함을 내세운다. 중요한 사안이기에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어디에나 밝히지 않아야 하는 비밀이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필요한 비밀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악인은 정당한 비밀의 기능을 정당하지 못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중요하고 특별해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분명 뭔가 숨어 있다.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푼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과장과 포장은 더 과해진..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잠 1:10) 귀가 얇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쉽게 동조하는 사람들이다. 대개는 마음이 여리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습성이 있다. 의심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먼저 수긍하고 동정한다. 긍정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잘 듣고 잘 받아들인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착하고 순수해서 그렇다. 그런데 착한 마음만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악하다. 착함으로 대했는데 악함으로 당할 때가 많다. 순수하게 들었는데 의도를 숨겼을 때가 많다. 처음에는 아니었는데 나중에 딴 소리 하는 경우가 많다. 큰 글자로 유혹하여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작은 글자의 함정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무턱대고 그런가보다 하면 안 되는 세상이다. 의심없이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