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4:10-11)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세례요한의 죽음 말입니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선지자요, 이 세상에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세례요한인데,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죽을 수 있습니까? 구약의 엘리야처럼 멋있게 하늘로 올려가셨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광야에서 천국 복음을 외쳤던 선지자인데, 마지막의 모습이 마음을 참으로 안타깝게 합니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이 세상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 재난 사고들, 불의한 죽..
(마 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보이는 자, 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다 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가 있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13절). 귀로 듣고는 있는데 깨닫지를 못합니다. 눈으로 보고는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합니다(14절). 마음이 완악하여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강팍해진 마음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귀를 막고 눈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깨달아서 돌이킬까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15절). 그런데 주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고 깨달아진다면 복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귀에 들릴 뿐만아니라, 그 말씀의 실상이 ..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말입니다. 사람들이 안식일에 대하여 논합니다. 안식일에 이런 일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안식일을 이렇게 범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사람들이 회당에 모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회당입니다. 그곳에서도 안식일에 대하여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정당한 질문입니다. 왜 하필 안식일에 병을 고치냐는 겁니다. 내일 고쳐도 되는데 왜 하필, 안식일을 범하면서 병을 고치냐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들의 입장과 전통의 기준에서 보면 맞는 주장입니다. 지킬건 지켜..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내려놓아지지 않는 짐들이 있습니다. 변한 것이 없는데, 환경은 그대로인데, 문제는 그대로인데,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으라는 것입니까? 마음에서 내려놓는다고 평안해집니까? 앞에 있는 상황은 그대로인데요. 내려놓아야지, 주님을 의지해야지, 주님만 바라봐야지...., 수없이 다짐해 보지만, 잠시뿐...., 현실에 부닥쳐 살다보면 짐은 여전히 그대로 있고, 변하는 것은 없고, 마음의 쉼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과 현실이 너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참된 안식을 누릴 ..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오늘 10장 전체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무거운 말씀입니다.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는 권능을 주십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십니다. 이 권능을 가지고 가서 천국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의 사명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이런 권능을 주시고 가서 사역을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신들이 팍팍 쫓겨나고, 모든 병들을 고치고, 기도하는 대로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정말 이런 권능이 나타난다면 못할게 없습니다. 어디든지 가서 신나게 사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가서 생각을 좀 해 보라고 하십니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신 의미를 아느냐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겁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알고 있느냐는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전통과 계명을 지키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그런 너희는 이 말씀의 의미를 아느냐는 겁니다. 너희는 진정 알고 그런 시비를 거느냐는 겁니다. 너희가 정말 율법을 아는지 가서 생각을 좀 해 ..
(마 8: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예수님의 짧은 이 말씀 한 마디가 오늘 아침 참 은혜가 됩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어디가 아프니?... 무슨 문제가 있니?... 무슨 힘든 일이 있니?... 왜 그리 힘이 없어?...' '염려마,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도저히 방법이 없다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구?... 너무 지쳤다구?...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구?...' '염려마, 내가 가서 도와 주리라' 주님의 이런 말씀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런 저런 문제 앞에서 염려하고 근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주님은 정말 뭐하고 계시는지, 내 기도는 왜 이렇게 들어주시지 않는지, 나에게는..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산상수훈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중요한 열쇠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거부감 없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정체성 없이 보면 불가능한 말씀으로 보입니다. 거부감이 생깁니다. 자기와는 먼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이런 자들이다, 그들은 이렇게 산다, 그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와 관련해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