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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갈 것만 같은 일들이 멈췄다. 당혹, 황당, 난감, 놀람의 연속이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 같았던 것들이 코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진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의 시간도 없다. 너무 슬프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었을 충격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나마 실감이 될 정도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짐승의 피 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제사장들을 비롯한 허다한 레위인들이 비대해진 몸을 이끌며 오고가던 일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외친 선지자를 역적으로 몰면서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거짓 위안을 주던 선지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사람도 회개하거나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마당만 밟고 다니며 자신들의 배만 위하던 자들의 번제를 역겨워하신 하나님이 징벌의 채찍을 드신 것이다. 주의 날을 더럽히고 사사로운 오락과 하나님의 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먹고 마심과 같은 허망한 일들을 실물이 난 하나님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이방 나라의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현상은 예루살렘 멸망 못지않은 충격이다. 국가 간의 왕래, 상거래, 교육, 환경, 문화 활동, 심지어 종교적 활동마저 비정상이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일어서는 기미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그러나 사회학자나 정치가들이나 종교인들 모두가 다 동의하는 것은 예전의 모습으로의 회복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며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묻힌 자들이 아니라 현재를 일궈야 하고 미래를 세워가야 할 책임이 있는 자들이 선택할 것은 무엇인가?

무너짐은 다시 세움을 예견케 한다. 망함은 흥함도 시사하는 것이다. 어차피 회귀할 수 없는 일이라면 현재 상태에서 긍정적으로 새판 짜기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보수 우파가 쫄딱 망했다고 망연자실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출범하려고 나서듯이 교회도 판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교회는 오래전부터 호황의 시기를 건너가고 있었지만 누구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착시현상에 놀아났다. 그러다가 코로나19사태를 맞은 것이다. 개 교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알곡과 가라지의 구분은 명확해진다. 밖에 버려져 짓밟히거나 불에 던져질 쭉정이가지고 알곡 만들겠다고 허비할 겨를이 없다. 살 가망이 없는 부분은 절단해야 남은 몸이라도 살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새판을 어떻게 짤 것인가? 먼저 알곡들을 모아 그들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하며 감격하며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으리라는 각오를 지닌 자들이 남는다.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을 죽이는 포학한 일들을 자행하고 아첨하는 무리들만 곁에 둔 아합 왕 밑에서 선지생도들 100명을 굴에 숨겨두고 봉양한 오바댜가 있었듯이 바알에게 절하지도 않고 무릎 꿇지도 않으며 입 맞추지도 않은 남은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참 일군들이라면 그런 자들과 함께 교회의 근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기록된 말씀이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은 고귀한 전통이나 관습이었다 할지라도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성경에 없는 직분이 그러하고 성경이 인정하지 않는 예전이 파기되어야 한다. 엔터테이너들을 육성하며 인본주의의 무익한 일들에 쏟아 부었던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전환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회복시켰던 예배의 단순화, 직제개혁, 순수한 장로회정치의 복원을 위한 발판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주님의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절호의 기회이다. 주의 백성들에게 생명과 장래 희망을 가지게 하시려는 주님의 긍휼하심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교회마다 분쟁이 사그라지지 않던 것들이 모두 멈춰버렸다. 더 이상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이 모독당하는 것을 하나님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싸우려면 모여서 시위라도 해야 하는데 모이지를 못한다. 흩어진 구름떼는 폭풍우의 위험이 없다. 하늘이 맑아지고 주변 환경이 더 청결해 진 것이다. 교회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맑아야 한다. 정결해야 한다. 순수해야 한다. 거짓이 없는 믿음과 청결한 양심으로 주님을 찾는 자들이어야 한다.

목사들은 말 그대로 구도자여야 한다. 도를 닦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륜과 연륜이 쌓일수록 그 도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크기가 어떠함을 더 풍성하게 드러내는 자여야 한다. 과거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 및 하나님의 위대한 일군들이 남긴 글들과 같은 역작들을 이 시대에도 배출할 수 있는 일군들로 우뚝 서야 한다.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배나 더 늘려야 한다. 주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능력은 주님께로부터 나온다. 그 주님은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 나 하나만이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런 곳에 새 희망이 솟으며 새 역사가 탄생할 것이다.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지혜나 표적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자여야 한다. 그것만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교회를 회복시키고 민족들과 열방에 회복에 대한 소망으로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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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개혁주의 칼럼(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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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새판짜기해야 한다!

교회, 새판짜기해야 한다! 계속 갈 것만 같은 일들이 멈췄다. 당혹, 황당, 난감, 놀람의 연속이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 같았던 것들이 코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진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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