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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본문: 눅 1:26-38
묵상 구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37, 38절)
처녀의 몸을 통해서 한 아기로 태어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한 사람을 사용하셔야 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놀라운 계획이요 위대한 일이지만, 막상 쓰임 받는 처녀의 입장에서는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닙니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해야 하는 엄격한 사회였습니다. 설명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고 누구 하나 용납해 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구인들 쉽게 이 일에 쓰임받겠다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을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은헤를 받은 자여”
“네가 하나님께 은혜을 입었느니라”
오늘 본문은 두 번이나 마리아가 은혜를 입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은혜입니다. 메시아가 아기로 오시는 일에 쓰임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을까요?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리아가 물을 때에 천사가 말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와우~~ 마리아의 대답이 놀랍지 않습니까? 아멘 하고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사람을 불러 사용하십니다.
그곳에 누가 가겠느냐?
이 일을 누가 감당하겠느냐?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그곳에
아무도 선뜻 하려고 하지 않는 그 일에
내가 누구를 보내야 하겠느냐?
구약 시대에도, 신약 시대에도, 2천년 기독교 역사에도,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누군가를 사용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 이사야갸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어떤 사람들이 쓰임 받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보내십니까?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입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특별한 임무를 맡기실 만한 그런 사람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을 맡기려 하실 때에 나는 마리아처럼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사야처럼 나를 보내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기왕이면 누구를 쓰시겠습니까?
아멘하는 자 아니겠습니까?
충성하는 자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 아니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믿음을 주신 자 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입혀 주신 자입니다.
마리아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이사야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기회를 주신 것, 건강을 주신 것, 해야 할 일이 앞에 있는 것, 뭔가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재물이 있는 것,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는 것, 다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사용하시고자 은혜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맡기고자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멘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이해가 가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맡기신 일에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용하신다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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