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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7: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이렇게 비참한 장면이 있습니까? '노아의 때에도 그러하였다, 롯의 때에도 그러하였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곧 홍수가 나서 모두가 다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없어질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죽고 사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다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코 앞에 그런 일이 닥칠 것을 모르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갔다고 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7절)


이제 곧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쏟아져서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죽고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8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을 모르고 오늘 시집 가고 장가 들고 잔치를 벌였으니 말입니다. 내일이면 다 없어질 것을 모르고 오늘 이것 살까 저것 살까 돌아다녔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살 줄 알고 최고로 좋은 집을 짓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 그 사람들만 그랬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만 어리석어서 그랬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0절)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시집 장가도 가지 말고 뭐 사러 다니지도 말고 마켓도 가지 말고....... 앉아서 기도만 하라는 것입니까? 교회 가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만 드리라는 것입니까?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사람들을 부추기는 사이비 이단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하겠죠. '있는 재산 다 팔아서 드려라. 이제 곧 주님이 오시면 다 필요없는 것이다. 그 전에 팔아서 하나님께 드려라. 그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서 많은 복을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곳으로 다 모여라.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이곳에서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사이비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얼릉 들으면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내일 오신다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게 해야지요. 다 팔아서 헌금으로 드리는게 낫지요. 지금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 갈 때가 아니지요. 집 사러 돌아다닐 때가 아니지요. 다 필요 없는 일이지요. 정말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성경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언제 주님께서 오실지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곳에 있다 저곳에 있다 하여도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3절)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오늘 본문 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잘 묵상해 보면 이 구절 안에 힌트가 있습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 (32절)


첫째,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남겨두고 갈 것에 연연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고 떠날 것들을 아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1절)


주님이 오신다는 나팔 소리가 나는데 집 안에 있는 세간을 가지러 갈 필요가 뭐 있습니까? 세상에서 뭘 하고 있든, 뭘 가지고 있든, 그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언제든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누릴 것처럼, 부질 없는 세상의 것에 삶의 목표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곧 갈 것인데, 가면 그만인데, 가면 더 좋은 것이 있는데,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다 없어져 버릴, 가지고 가지도 못할 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을 바라보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롯의 처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도 롯의 처와 같이 자꾸 세상을 뒤돌아보지는 않는가, 세상에 목표를 두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의 것 때문에 아쉬워하고 미련을 두고 마음 상하고 속상해 하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3절)


둘째, 이미 죽은 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죽은 자이다' 외치며 살라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살고 계신다' 그렇게 외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인데 세상의 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죽은 자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죽은 자가 속상할 일이 무엇입니까? 죽은 자는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아웅다웅 할 것도 없습니다. 비교하고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도 유명하다 하여 얼마전 '명량'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12척의 배로 330여척 되는 배를 가진 일본군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말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모두가 다 이 싸움은 안된다고 말립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순신 장군이 이런 말을 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와우! 깜짝 놀랐습니다. 몸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역시 우리의 이순신 장군!!... 그래서 그랬을까요? 죽고자 하는 길을 택합니다. 죽고자 밀어부쳤습니다. 그랬더니 이겼습니다. 살았습니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의 싸움에서 그러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그 날을 바라보며,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이미 죽은 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맞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 죽은 자인가, 오직 예수님만 사시는 자인가, 아니면 아직도 내가 살아있는 자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롯의 처를 기억하며 이미 죽은 자처럼 사는 것이 방법입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원에 들어가고 수도원에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이 세상의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언제 주님이 오셔도 괜찮습니다. 맷돌을 갈고 있든, 밭에서 일을 하고 있든, 밤에 잠을 자고 있든, 주님이 오시면 그대로 가면 그만입니다.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다 놓고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무엇을 향하여 살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지금 당장 오셔도 괜찮겠습니까?


롯의 처와 같이 뒤를 돌아보지는 않겠습니까?


아직도 내가 살아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날에도 이러하리라'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와 같이, 그 날에도, 내가 다시 오는 그 날에도 사람들이 이러하리라'


그 사람들 중에 우리가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