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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성도라면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도라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까요?


우선, 절박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이 없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큰 병에 걸리거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래도 나아가 기도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그리 절박한 문제가 없을 때에는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몇 분 기도하면 할 말이 없다구요? 그만큼 기도할 제목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경우가 적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기도해 보아도 별 다른 변화도 없고 응답도 없고, 그래서 몇 번 기도해 보고 중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위 '기도의 능력'을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에 어떤 파워가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느 도시에 안하무인, 말 그대로, 눈 아래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아주 교만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듣지 않는, 천하에 무서운 사람이 없는, 완전히 꼴통, 외골수 재판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과부가 그 재판장에게 찾아가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애원합니다. 재판장은 들은 척도 안하고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러기를 여러번 하였습니다. 


그러다 재판장이 생각합니다. 그 과부가 너무 자주 찾아와서 귀찮게 하니까 그 원한을 풀어줘 버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번거롭게 굴 것이기 때문에, 이유를 막론하고, 원래 사람의 어떤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데도, 귀찮으니까 그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이야기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8절)


그런 불의한 재판장도 밤낮 찾아와 귀찮게 하면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하는 기도를 어떻게 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소리, 간청하는 소리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인내하며, 밤낮 찾아와 간청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가르치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하여 이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절)


기도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첫째, 항상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가끔, 어쩌다, 무슨 일 있을 때만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평상시에,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문제가 생긴 후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평소에 문제가 없을 때 기도하는 것이 낫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평소에는 기도하지 않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때만 가서 기도하느냐는 말입니다. 마치 문제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물론 문제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 꼭 그것과 같은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따라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눅 22:39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셔서 뭘 하셨겠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소풍놀이 하셨겠습니까? 사냥을 하셨겠습니까? 잠을 주무셨겠습니까?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감람 산에 가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어쩌다 문제 생기면 가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습관을 따라서 가셨습니다. 평소에 기도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우리도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평소에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기도할 제목이 없다구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할 제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 기도만 하려고 하니까 없는 것입니다. 자기 문제만 가지고 기도하니까 문제가 없을 때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대한 두 번째 교훈은 무엇입니까?


둘째,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아무런 변화도 없다고,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어떤 '요술램프'(?)의 기능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문제을 아뢰고 하나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을 때 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과,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는 주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일방적으로 아뢰는 것이 아니라 상호 소통하는 대화입니다. 내가 말씀도 드리고, 주님도 내게 말씀하시는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호흡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성장하고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는 것은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하는 대화와 같습니다. 자녀가 무엇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바로 들어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녀에게 필요한 것인지, 합당한 것인지, 생각도 해야 하고, 서로 절충도 해야 하고, 이해도 시켜야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녀를 훈련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들이 지나고 부모와 자녀간에 좋은 합의가 되었을 때, 마음에 어떤 합의점을 찾았을 때,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그런 과정인 것입니다. 서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아뢰는 것입니다. 그런 대화와 과정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인도해 가십니다. 내 생각을 인도하십니다. 그것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훈련시키십니다. 내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께 아뢰다 보면, 내 생각을 바꾸어 주시든, 내 요구를 들어주시든, 더 좋은 어떤 것을 주시든,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믿으면, 그렇다면 기도하다가, 한두 번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살후 3:13) 


선을 행하다가...,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한 기도이든, 이웃을 위한 기도이든, 교회와 나라를 위한 기도이든,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이것을 몰라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드린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문제는 다 아는데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 아는데, 기도해야 하는 것을 다 아는데, 나도 예수님처럼 습관을 따라서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아는데,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뭘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새로운 무슨 자극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기도합시다. 결단하고 기도합시다. 바로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문제가 없을 때 기도합시다. 평안할 때 기도합시다. 


늦을 때가 옵니다. 후회할 때가 옵니다. 이런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기도합시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