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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어릴 적부터 참 많이도 듣던 성경 이야기입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 예수님이 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시게 되는 길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삭개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2절)


우선 부자였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특히 '부자'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나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눅 6:24)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눅 18:25)


한 마디로 부자는 예수님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누가복음 18장에 소개된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눅 18:23)


재물이 많을수록, 큰 부자일수록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삭개오도 부자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는 그 당시에 창기와 같은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창기와 세리' 가장 손가락질을 받는 나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게 삭개오는 그냥 평범한 세리도 아니고 세리장이었습니다. 아주 질 나쁜 극악한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였습니다. 다시 말해, 가장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악한 방법으로 살던, 사람들을 속이고 빼앗으며 살던, 그렇게 모은 많은 재물을 의지하며 살던, 악한 세상과 타협하며 살던 죄인 중의 죄인이었습니다. 용서 받을 수도, 구원을 받을 수도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는 아름다운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부자라고 무조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건 말도 안돼죠. 세상에는 나쁜 방법으로 부자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진 재물로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재물로 좋은 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라도 예수님 만나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암요 당연하지요. 세상의 누구라도 예수님 만나면 구원을 받습니다. 아무리 극악한 죄인이라도 예수님 만나면 됩니다. 세리장이라도,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렇게 됩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부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죄를 얼마나 지었는가도 아닙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만났는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였는가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자신의 많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재물이 아까웠습니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재물이 예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지만 또 어떤 부자는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물을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재물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기쁨이 더 컸습니다. 아무것도 예수님과 그의 사이를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집으로 모신 후 기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8절)


일단 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세리는 거의 그렇게 재산을 모은 사람입니다. 속이고 착취하고 빼앗아서 재산을 모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네 배로 갚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재산을 다 내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다 내어놓아도 부족할지 모릅니다.   


같이 예수님을 만났는데, 어떤 부자는 재물 때문에 근심하였고, 삭개오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진짜 예수님 만나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변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시고 있고, 재물도, 세상도 함께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되면 다른 모든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은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을 반성하고 바로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 사람으로 살겠다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다 다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뒤로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만 따르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예수님 만난 자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자의 특징입니다. 


진짜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면 생각만으로... 모셨다고 생각만하기 때문에, 아니면 반쯤만 모셨기 때문에, 예수님도 모시고 있고, 다른 것들, 필요한 세상의 것들, 돈, 명예, 권력, 탐욕, 음욕, 자존심, 이기심.... 다 같이 그냥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먼저가 되면 안됩니다. 돈이 예수님보다 앞서면 안됩니다. 돈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얼마를 가졌든, 앞으로 얼마를 가지게 되든, 그것이 예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으면 안됩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면 안됩니다. 다른 길로 가게 되면 안됩니다. 그러면 큰 일입니다. 정말 큰 일입니다.  


나는 돈이 없으니까 안심이야.... 돈 있는 자들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오락, 취미, 영화, 도박, 게임, 술, 담배, TV, 친구, 운동, 여행....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 때문에 교회 못 가고, 예배 안 드리고, 말씀과 기도 생활 못 한다면... 그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이 예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큰 일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자는데, 성경공부 하자는데, 기도 생활 하자는데, 예배에 나오라는데, 골프 때문에 근심하더라, 여행 때문에 근심하더라...., 무엇 무엇 때문에 근심하며 대답을 못하더라...., 슬슬 뒤로 도망하더라....,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럼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무엇을 포기하셨습니까? 무엇을 끊으셨습니까? 무엇을 안하게 되셨습니까? 


예수님과 나 사이에 아직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예수님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 앞에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0절)


오늘도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고 계십니다. 방황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고 계십니다. 언덕 비탈진 곳, 곧 떨어져 죽을 지경에 있는 그 한 마리 양을 향하여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방황하는 자들이여, 길 잃은 자들이여,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이여, 만일 그런 자들이 있다면, 예전엔 나도 잘 믿었다 안심하지 마시고,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예수님을 잘 모시고 있다 스스로 착각하지도 마시고, 이제 그만 예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왜 제가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필요한 자가 읽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 방황하시고, 이제 그만 주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나 저제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대로 세상을 향하여 더 가시면 안됩니다. 다시 돌이켜 주님께로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매 주일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자, 결단하지 못한 자, 만일 있다면, 이제 그만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많지를 않습니다. 기회가 계속 있지를 않습니다. 


우리 모두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에게도 삭개오처럼 변화된 모습이 있는가 돌아봅시다. 그리고 다시 결단합시다.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다면, 아직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직도 붙들고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아직도 끊지 못한 것이 있다면 결단합시다. 


예수님을 진짜 만나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진짜 주님으로 모시고 있으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이 도와 주시기에 할 수 있습니다. 결단하고 순종하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고국의 명절, 한가위 추석 아침이네요. 고향과 부모님과 고국이 그리운 아침입니다. 


우리 주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풍성한 한가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