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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1-9]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1절)

 

사도 바울의 어조가 매우 강경합니다. 거짓 가르침에 미혹된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어리석도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며 강한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바로 눈 앞에 보이듯 분명한 사실인데, 왜 다른 가르침에 현혹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무력하게 하는 잘못된 가르침이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십자가 복음은 단순하고 분명한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을 더해서도 빼서도 안 되는 명백한 복음입니다.

 

믿는다 하면서 삶이 따라주지 못한다 하여 행함과 순종과 삶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십자가 복음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함으로는 안 되기에, 우리의 어떤 노력과 순종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내가 안 되기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나는 안 되기에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분이 구세주이심을, 그분을 통해서만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 얻을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삶이 따라주지 못한다 하여 이 믿음에 행함을 더할 수는 없습니다. 행함과 삶을 강조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행함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행함을 보태어 강조한다 하여 성도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부류나 행함을 강조하는 부류나 삶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죄의 유혹과 꾀임에 빠지는 것도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력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도의 성숙한 삶을 명분으로 구원의 조건에 행함과 삶을 보태는 것도 십자가를 무력하게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 받은 자이기에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안 되고 부족하기에 십자가를 붙들고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의로운 척, 고귀한 척, 높은 척, 거룩한 척, 겸손한 척... 척척척 하는 변종된 거짓 복음을 경계합시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