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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1-7]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실상이요 증거라 하였습니다. 마음에 갖는 확신이나 신념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하는 믿음은 현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달픈 현실을 외면한 채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마음으로 확신하라는 의미로만 믿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주어진 소망을 미래의 것으로만 품지 말고, 현실의 삶에 실체로 가져와 그 안에서 실제로 현재의 삶을 살라는 의미로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와 상황만 보지 말고,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소망을 현재의 삶으로 가져와 보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보이는 성전에 가서 제사하지만, 예수님의 온전한 제사로 그것은 폐하여졌으니, 이제는 보이지 않는 참 성전에 믿음으로 들어가 참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휘장 안 지성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은 그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의 삶에 실제로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날마다 그 보좌 앞에 실제로 나아가 필요한 은혜를 채움 받고, 그 능력으로 오늘 하루 실제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실제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인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세뇌하듯 주입하는 생각의 운동이나 거듭된 다짐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마음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일어나야 하는 “실상”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루 종일 24시간 하나님 생각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종일 하나님 생각만 할 수 있습니까? 

 

하루 종일 주님 생각만 하면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예수님의 정신과 성품과 삶을 본받아 오늘 하루의 삶에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라는 것입니다. 

 

마지 못해, 억지로, 인상쓰면서, 단지 밥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가운데서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땀을 흘리며, 더 참아내며, 때로는 남 모를 눈물도 삼키며, 이를 악물고, 견디기 힘들지만 그래도 견디어 내는 것, 살아내는 것, 그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동행은 그저 현실을 떠나 생각으로 유토피아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동행은 현실입니다. 실제입니다. 삶입니다. 고통과 문제의 한 복판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고달픈 현실, 문제 투성인 현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현실, 그 현실의 한 복판에서, 믿음으로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것, 믿음으로 주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해 내는 것, 그래서 고달픈 현실을 하나님 나라의 유토피아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동행입니다. 

 

그 동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소망을 현실의 삶에 실체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실상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실상”의 믿음을 가지고 “실제”의 삶을 사는 것이 동행입니다. 그 동행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눈 감고 유토피아로 도망가지 맙시다. 눈을 부릅 뜨고 삶의 한 복판을 지나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