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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생각해 보면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22장의 혼인 잔치 비유 말입니다. 임금이 잔치를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합니다. 


다른 종들을 보내어 다시 초청합니다. 소도 잡고, 살진 짐승도 잡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으니 와서 먹으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핑계를 대며 가 버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화를 내며 종들을 잡아서 죽여버립니다. 아니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안 가면 그만이지... 잔치에 초청하러 온 종은 왜 잡아 죽입니까? 


임금이 화가 나서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사람들을 진멸합니다. 그리고 그 동네를 불살라 버립니다. 임금님도 무서운 분입니다. 


그리고는 종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길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종들이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이 비유가 왜 무서운 말씀으로 들립니까? 이 잔치는 그냥 혼인 잔치가 아닙니다. 그냥 밥 한 번 먹고 가면 끝나는 잔치가 아닙니다. 천국의 잔치를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이것이 무슨 잔치인지 알았다면, 잔치에 초청하는 분이 어떤 임금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그래도 거부하고 가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천국 복음을 그렇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그냥 흘려 듣고 만다는 것입니다. 교회 가자는 것을 식당에서 밥 한 번 먹자는 소리로만 듣는다는 것입니다. 초청한 분이 예수님이라고 해도, 하나님이라고 해도, 무슨 말인지 들리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차, 삼차, 계속 청하여도 거부합니다. 싫어합니다. 무시합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잔치에 초청한다고 핍박합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 욕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도 세상 어느 곳에서는 옥에 가두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 비유의 말씀 그대로 입니다. 2천년의 역사 동안 사람들이 이 비유 그대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이 어떤 잔치인지 모르고, 초청하는 분이 어떤 분이지 모르고 그렇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오늘날 교회 안에서 신앙 생활하는 우리의 모습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예배 나오라는 것을, 기도하라는 것을,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공부 하자는 것을, 그냥...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밥 한 번 먹자는 얘기 정도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바쁘면 못 가도 되는 것으로, 일이 있으면 못 해도 되는 것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잔치야 또 있는거 아니겠어,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가, 다음에 가지 뭐....., 예배가 오늘만 있는거 아니잖아, 오늘은 진짜 바빠, 다음에는 꼭 갈께....., 기도해야지, 성경 읽어야지, 성경공부 해야지, 나도 다 알아, 모르는게 아니야, 그런데 진짜 시간이 없네, 좀 지나고 한숨 돌리고 나면 그때는 꼭 하도록 해 볼께......


그냥 한 번 오라는 소리로 듣기 때문입니다. 그냥 한 번 하라는 소리로 듣기 때문입니다. 뭘 하라는 건지, 어디에 오라는 건지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늘 있는 것으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핑계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맞는 이유, 합당한 이유, 현실적인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핑계입니다. 다 핑계입니다. 


자기 좋아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합니다. 정말 중요한 사람이면 아무리 바빠도 만사를 재쳐 놓고 만납니다. 진짜 중요한 모임이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모임이면 다른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반드시 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다 핑계입니다. 이건 중요하지 않게 들리는 것입니다. 가볍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싫은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습니까? 내가 가지 않는 어떤 곳이, 하지 않는 어떤 일이, 핑계를 대면서 미루고 있는 어떤 일이, 정말 그래도 되는 것들입니까? 가볍게 여기고 지나가는데 그것이 천국 잔치와 같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까? 정말 아닙니까?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쁩니까? 무엇을 향해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까?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까? 후회하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까? 열심히 가고는 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초청장이 올 때 그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갈 수 있을 때 가야 합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합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가볍게 지나가 버리는 일이 정말 중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잠시 서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지나가도 되는 것인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잠시 서서 점검해 보고 가야 합니다. 이대로 가도 되는지, 맞는 길인지, 후회하지 않겠는지, 확인해 보고 가야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절) 라고 하셨습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은 많은데, 들은 사람은 많은데, 권유를 받은 사람은 많은데, 거기에 응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기회를 다 주는데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초청에 응하는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고 반응하는 사람이,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이 '택함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택함 받은 자이기 때문에 이래도 돼, 걱정없어, 나중에 천천히 하면 돼, 바쁜데 어떻게.... 이건 누구의 판단입니까? 


밭에서 값진 보화를 발견하고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산 사람처럼, 천국 복음을 듣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자, 그래서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그 초청에 응하는 자, 그런 사람이 바로 '택함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만 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수없이 말씀해 주시는 주님,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초청장을 주시는 주님, 매일 매일 말씀으로 이렇게 인도해 주시는 주님,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어리석은 자 되지 않도록, 나중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 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동행..., 주님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하라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면 됩니다. 핑계대지 말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놓칠 일 없습니다. 후회할 일 없습니다. 동행하면 잘못될 일 없습니다. 


오늘도 굿모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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