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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금지에 대한 소고>
히브리서 10장에서 권고하고 있는 대로 끝 날이 가까워 옴을 볼수록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부정할 성도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방역차원에서 다중이 모이는 집회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통령마저도 적극 지지한다고 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할 정부로서 종교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발설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허나 교회는 모여야 교회이다.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권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강행하다가 그것이 신앙적 위대한 결단이라 할지라도 행여나 한 사람이라도 감염자가 나와서 강제 폐쇄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그 결과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사실 난감한 입장에 있다.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는 것을 대안으로 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에, 더구나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여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방역당국이 내놓은 7가지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예배를 하는 소규모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고 중지했던 교회들도 방안을 찾고 있다. 유익한 결과를 낳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점검할 부분이 있다. 만일 역병에 의한 예배 금지가 아니라면 전국의 그 모든 교회들, 성당들의 주일 집회가 폐쇄될 경우가 있을까? 전쟁 때에도 예배는 했다고 자랑한다. 물론 이북 공산당은 예배당을 파괴하고 기독교를 전멸시키는 작업을 하여 사실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러한 일이 이 땅에 벌어지지 않음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다. 그런데 공산 독재 치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모이지 못할 만큼 물리적인 강압적 법령이 집행되는 나라에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그 동안 그렇게 사랑하며 즐거워하며 예배하던 일들이 하루아침에 금지되었을까? 물론 일차적 원인은 정부의 지시나 권고사항 혹은 행정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모스 선지자가 나팔을 분 것과 같이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3:6)를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번지게 허락하셨을까?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로 해석할 수 있다. 북방에서 뜨거운 불길을 쏟아 부으신 것처럼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는 나라, 공산주의 정신이 지배하며 기독교를 탄압하고 폐쇄시키는 나라에서 이 역병이 돌게 하여 그것도 전통적으로 가장 기독교가 왕성했었던 나라들에게 번졌다. 기아급수로 확산되고 있어 모든 나라 지도자들이 당혹감에 사로잡혔고 세계 열방이 다 공포와 두려움에 갇혔다.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의 최후의 날이 지체되고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의 타락과 배도의 길 때문에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피해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목사들이 한결같이 외친다. 회개하자고. 사실 하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치유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선포한다. 그 일은 글로서나 방송으로서나 할 수 있는 매체들을 총 동원하여 전파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는 모른다. 답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배금지에 대한 정부의 조치를 통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를 왜 하나님은 금지시킴을 허용하셨을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지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 오지 말라 분양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나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에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11-14).
 
그냥 예배금지가 벌어졌다면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강력한 데모가 벌어졌을 것이다. 세계 교회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정부의 정책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태는 항의데모도 할 수 없고 각국의 권력들을 동원하여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모두가 다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나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자리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들을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가 주일마다 모여 예배하는 일, 헌금을 드리고 봉사한다고 수고의 땀을 흘리는 일들, 지금까지 한국의 교회가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헛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돌이켜 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무수한 집회들, 행사들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끼치는 것이 되었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만 살아계신 유일무이하신 전능자요 창조주이시오 구원자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는 일이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은 전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의도와 생각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모이는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과 즐거움과 만족을 위한 것들이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권력자들의 행정 명령을 통해서 공 예배만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크고 작은 모임들까지 금하게 만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시는 헛된 예배,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우리들만의 잔치와 놀이에 급급해왔던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와 변론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죄가 주홍 같아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여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될 것임을 약속하신다. 그래서 회개해야 한다. 주님께서 명하신대로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거절하고 배반하면 역병의 칼에 삼킴을 당할 것이다.
 
여기서 개혁교회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다른 교회들과 달리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자 심혈을 기울여 왔는데 왜 우리도 예배금지 명령에 순복해야할 처지가 되었는가? 예루살렘에서 공의를 행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구하는 자 한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예레미야 선지자 한명이 있었지 않았는가? 그 한명도 결국 포로로 끌려갔다. 나는 개혁교회를 추구하는 목사 입장에서 개혁교회를 한다며 우리도 알지 못하는 영적 교만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그래서 하나님의 입에서 토해냄을 받아야 할 상태는 아닌지 내 스스로를 깊이 성찰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금하고 있는 것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라고 침묵한 죄를 회개한다. 괜스레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입을 닫아버린 죄를 회개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서 나도 동일한 죄를 범하고 살아온 악을 회개한다.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포로 된 자를 돌이키실 때 꿈꾸는 듯한 감격과 웃음과 찬양이 가득한 그 날이 속히 오기만을 간구한다. 여호와 우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도다라고 노래하며 다시 모이는 예배가 가능할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 울며 씨를 뿌리자. 영상매체를 통해서라도 나팔수의 임무에 충실하자.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쇠해지고 창조주 주권자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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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 개혁주의 칼럼(2020.03.21)

http://www.kirp.org/www.kirp.org/main/sub.html?boardID=www17&num=136&Mode=view

 

예배금지행정명령 혹 하나님께서?

예배금지행정명령 혹 하나님께서? <예배금지에 대한 소고> 히브리서 10장에서 권고하고 있는 대로 끝 날이 가까워 옴을 볼수록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부정할 성도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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