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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고에이미'란 '나는 ......이다'라는 뜻의 헬라어입니다. 최초의 '에고에이미' 선언은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떨기나무 가운데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냐고 모세가 묻자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I AM WHO I AM" (출 3:14)


'나는 곧... 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나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십니다. 


'에고에이미'는 바로 그 선언입니다.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선언하시는 말씀이 바로 '에고에이미'인 것입니다.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이 있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48)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9:5)
  3. "나는 양의 문이다" (10:7,9)
  4.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11, 14)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15:1, 5)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와 함께 요한복음에는 또한 일곱 개의 '표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들 가운데 특별히 일곱 개만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 개의 표적들은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표적들을 '에고에이미'의 예증이요 예화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 선언을 일곱 개의 표적들과 연결하여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일곱 개의 표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 (2:1-12)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 (4:46-54)
  3.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 (5:1-9)
  4.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 (6:1-15)
  5. 물 위를 걸으신 표적 (6:16-21)
  6.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신 표적 (9:1-7)
  7.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11:1-44)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는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말씀이요, 일곱 개의 표적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사건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요, 그로 인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고에이미' 선언들을 통해, 행하신 표적들을 통해, 우리가 보고 깨달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더 확실하게 믿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서 '에고에이미' 선언과 표적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


첫 번째 에고에이미까지 쓰려고 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길게 되면 읽기에 힘드실 것 같아서요.


앞으로 일곱 번에 걸쳐, 일곱 개의 '에고에이미'와 일곱 개의 표적들을 연결하여 저의 묵상의 글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서론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서, 쓰다보니까 묵상이라기 보다는 설명하는 글이 되어버렸네요. 저의 아침묵상 글은 어떤 신학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쓰다 보면 때로는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그때 필요한 대로, 감동 주시는 대로, 써 가겠습니다. 


아침 묵상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네요. 부족한 글인데, 매일 평균 50여분이 고정적으로 읽어주고 계십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고 저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됩니다. 매일 못 읽는다고 미안해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런 마음을 가져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누구보다 저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한 두 분이라도 혹 도움이 되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열심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을 써 가면서, 매일매일 말씀과 함께 사는 것이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저 스스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정말 생명의 샘입니다. 아무리 퍼 내어도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샘물입니다. 그렇게 오묘하고 신비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할 수록, 묵상할 수록 더 깊이 깨달아지는 신비, 마음을 살려주시는 신비, 삶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신비, 참으로 신비한 말씀입니다. 매일매일 한 구절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이런 신비를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님과의 동행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매일매일 말씀과 함께 그 말씀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 앞에 서게 되는 그 날까지, 우리의 본향 저 천국에서 살게 되는 그 날까지, 이렇게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을 갑시다.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가는 이 순간순간이 곧 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