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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에고에이미' 두 번째 선언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신 사건과 연결됩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맹인을 고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요한복음 9장에는 특별히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임을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아예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무엇을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살다가 맹인이 되었다면, 무슨 사고를 당해서 그랬다, 병이 들어서 그랬다, 무슨 죄를 지어서 그랬다, 벌을 받아서 그랬다 말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죄를 지어서 그랬다고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2절)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그렇데 되었다.' 그렇게 말씀하신 후 한 번 더 '에고에이미' 두 번째 선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5절)


그리고는 그 맹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무엇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눈을 고쳐서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눈을 고침받은 이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멀쩡하게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놀래서 묻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느냐?'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15절)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냐? 안식일에 그 일을 한 것을 보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는 아니다. 어떻게 죄인이 이런 신비한 일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이냐? 누구냐 도대체 그 사람이?...'


자기들끼리 분쟁이 일어나고 난리가 났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의 부모를 불러서 물어보고, 다시 그 맹인을 불러서 물어보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누구냐 그 사람이? 죄인이 아니냐? 죄인이 어떻게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느냐? 너의 눈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뜨게 되었느냐?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느냐 도대체?...'


묻고 또 묻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답답하다는 듯이 바래새인들에게 대답합니다. 이 말이 재미있습니다.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0절)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2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3절)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보고도 왜 모르느냐는 것입니다. '맹인으로 난 사람의 눈을 뜨게 했다는 말을 들어보았느냐?' 지금 앞에 일어난 일을 보고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맹인이었던 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영적 맹인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되었던 이 사람이 맹인이 아니라, 평생 눈을 뜨고 살았지만, 다 보고 살았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는, 영적인 실상을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이 바로 영적 맹인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맹인이었던 자가 나가서 다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합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39절)


거기에 있던 바리새인이 말합니다.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41절)


너희가 바로 맹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너희가 바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진짜 맹인입니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영적 실상을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눈 앞에 일어난 일을 보고도,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멀쩡히 눈을 뜨고 보게 되는 기적이 자기들 눈 앞에 일어났는데도, 그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 그들이 진짜 맹인입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고 왔느니라. 그렇게 세상을 심판하러 왔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본다고 하는 자들, 안다고 하는 자들, 똑똑하다고 하는 자들, 잘하고 있다고 하는 자들, 그들을 그대로 두는 것, 영적 맹인인 상태로 두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자기 이론에 빠져서, 자기 생각과 논리와 이성과 경험과 지식에 갇혀서, 도무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 아무리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자, 보고도 못 믿는 자, 그들을 평생 그렇게 살도록 두시는 것, 변하지 않게 그냥 두시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심판입니다. 변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들, 알지 못했던 우리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우리들, 뭐가 뭔지 몰랐던 우리들, 우리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눈을 고쳐서 보게 해 주셨습니다. 영적인 실상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게 해 주셨습니다. 보지 않고도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 남들은 못 믿는데 나는 믿게 된 것, 남들은 보지 못하는데 나는 보이는 것, 다 믿어지는 것, 안 봐도 다 보이는 것, 이것이 축복입니다. 정신 나간 것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고쳐서 그렇게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9)


우리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주신 참 빛이십니다. 


그 빛을 알아보는 자가 있고, 알아보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있고, 영접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0, 11)


하지만, 믿는 자들, 영접하는 자들, 참 빛을 알아보는 자들, 그들에게는 이러한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무엇임을 알면 다른 것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 바라지 않습니다. 아직도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면, 아직도 뭔가 답답함이 있다면, 바라는 다른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최고의 영광이요 축복 아닙니까?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처럼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셔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참 빛을 비추어 주셔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이 바로 세상의 빛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이 바리새인들 앞에서 한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왜 못 알아보지? 왜 못 보지?... 진짜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