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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본문: 시 70:1-5

 

묵상 구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5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은혜인 것 같습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주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그렇게 인정하고 고백한다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에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절함이 없어지는 것도 왜 그렇습니까? 반대로 언제 그렇게 간절해집니까? 연약함이 드러날 때입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이 드러날 때입니다.

 

간절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그러니 느껴지는 은혜도 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이 지나고 보면 은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질병도 허락하시고, 문제도 만나게 하시고, 어려운 계곡과 험한 산도 지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구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도우시고 건지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에 행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찬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의 짧은 지식으로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선한 의도가 있으심을,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향한 선하고 완벽한 계획이 있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이심을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먹고 살기 좋아진 오늘날, 간절함이 많이 없어진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열정이 예전과 갖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설교도 다 거기서 거기고, 찬양도 예배도 성경공부도 다 그저 그렇고, 뭐좀 다른 거 없나, 찐한(?)거 없나 찾아보지만, 잠깐 반짝일 뿐 다 그냥 그렇고..., 이런 현상이 언제부터 일반화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사탄이 의도하는 고도의 전략에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얼마나 상황이 급하고 간절하면 그러겠습니까?

하나님께 서둘러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간절함을 회복합시다.

식어진 열정을 회복합시다.

시들어진 기도를 회복합시다.

뜨거움 없는 찬양과 예배를 회복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더 가난해져야 합니다.

더 궁핍해져야 합니다.

더 약해져야 합니다.

더 낮아져야 합니다.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더 부르짖어야 합니다.

간절한 만큼 은혜도 클 것입니다.

 

짧은 인생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냥 이리 가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간절함

뜨거움

회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