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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바리새인들과 헤롯당들이 사람을 보내어 한 질문입니다. 세금을 바치라고 하여도 문제가 되고 바치지 말라고 하여도 문제가 되는 곤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왜 나를 시험하느냐?"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한 질문임을 아시는 것입니다. 


데나리온 동전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저들이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의 이 대답을 듣고 매우 놀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무슨 의미입니까? 세금을 바치라는 것입니까? 바치지 말라는 것입니까? 


잘못하면 이것을 임의로 해석할 수 있는 애매한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애매한 말씀이 아닙니다. 아주 분명한 말씀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세금을 내는 문제와 연결해서 해석을 하면 안됩니다. 나라에 세금을 잘 내라는 말씀으로, 혹은 반대로,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둘 다 틀린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의도가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특수한 상황 가운데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를 신으로 숭배해야 하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가이사를 신으로 섬겨야 했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신이 없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를 숭배하는 증거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겨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이사 숭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어지는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가이사에게 충성을 하고 로마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로마는 세금 바치는 것을 거부하는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걷어내기 위해서 세리들에게 권하는 주었습니다. 세리들은 그 권한을 이용하여 바쳐야 할 이상의 세금을 착취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로마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세리들을 상종못할 죄인으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세금을 바칠 수도 없고, 바치지 않을 수도 없는 이런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나온 질문인 것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바치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아주 분명한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혼동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갈등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리고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는 자들에게, 아주 확실한 답을 하고 계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무슨 의미입니까?


이 '데나리온'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가진 돈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이 돈을 준 자가 가이사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입니다. 너희 각자가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에게 누가 진짜 왕이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섬기는 진짜 신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너희의 주인이 누구냐? 가이사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입니다. 너희 각자가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이사를 섬기는 자들은 가이사에게 바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가이사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인정하는 자들은 세금을 바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으로, 왕으로, 주인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곧 가이사 숭배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분명한 가이드 라인입니다. 세금을 내느냐 안내느냐가 아니라, 먼저 누가 진짜 왕이냐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라에 세금을 내는 문제는 이 상황과 다릅니다. 누구를 신으로 섬기는 의미로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단지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대한 의미로 해석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누가 왕이냐는 것입니다. 누가 주인이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나 자신입니까? 


우리는 누구를 왕으로,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세상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성공하고 잘먹고 잘사는 것입니까? 


우리도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바칠까요? 말까요?'... '얼마나 바칠까요? 이만큼이면 될까요?'


주님이 우리에게도 같은 대답을 하십니다.


'이것의 주인이 누구이냐?'


'너는 정말 이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느냐?'


'네가 가진 시간, 건강, 지위, 기술, 능력.....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주인이냐? 하나님이 주인이냐?'


.........


'네것이면 네가 알아서 쓰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것이면 하나님을 위해서 쓰라'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너무 확실하고 분명한 대답 아닙니까? 


우리의 모든 삶의 상황에 적용해야 하는 예수님의 분명한 대답이십니다. 


오늘 마가복음 12장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3절)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44절)


과부의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얼마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바쳐야 하는지,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다 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부 다 교회에 헌금으로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오해하실까봐....),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다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가이사를 위해서 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헛되고 부질없는 세상의 것을 잡으려고 사는 불쌍한 인생이 되지 맙시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행복한 인생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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