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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있을 때 잘 해!'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옆에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살아계실 때 잘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너무나도 맞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됩니다. 항상 옆에 있을 것 같지만,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지만, 다음에 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살다보니까 깨닫게 됩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잘 할 걸, 그때 좀 더 할 걸...' 지나고 나면  후회가 됩니다. 항상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살다보니 헤어지고 떠나고 이별하는 날이 오는데 말입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오는데 말입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무슨 핑계가 그리도 많은지, 참 어리석게도 앞에 있는 기회들을 다 흘려보내고 꼭 지나고 나서 후회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 잘 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꼭 그렇게 들립니다. 


한 여인이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7절). 같은 사건을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닦았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3)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이 분개하였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8, 9절)


요한복음에는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았냐고 말합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면 노동자의 거의 일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큰 금액입니다. 


제자들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가르치신 말씀과도 부합되는 말입니다.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저 같았어도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아이고... 아까워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비싼 향유인지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부인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0절)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1절)


예수님께 좋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에게는 비싼 향유보다 예수님이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 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잘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말이 이치에 맞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한 말입니다. 그들의 왕으로 오신 분인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왕이시라면 그깟 향유 한 옥합이 문제이겠습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동방에서 온 이방인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신 줄 알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오늘 이 미천한 여인도 예수님께 향유 한 옥합을 아낌없이 깨어 드리고 있습니다. 이방인과 미천한 자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대인들은 아닙니다. 결국 유대인들에 의해 왕이 십자가에 죽게 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말 왕이요 하나님이심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여인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발등에 그 옥합을 부어드렸어도 제자들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제 곧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셨다고 했는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전혀 새기지를 않은 것입니다. 


똑똑해서 하는 말 같지만, 세상 이치를 너무 잘 알고 하는 말 같지만, 가난한 자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성경적이고 합당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상황도 모르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두 가지 상반되는 모습이 비교됩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의 모습과 분개하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여인에게는 오직 예수님만 보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소중합니다. 무엇과도 비할 수 없습니다. 여인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 분입니다. 예수님께 잘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께 다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정말 현명한 여인입니다. 함께 계실 때 그렇게 했으니 얼마나 현명합니까? 기회가 있을 때 최고의 것을 드렸으니 얼마나 현명합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3절)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한 여인입니까? 얼마나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입니까? 


제자들은 후에 얼마나 후회를 하였겠습니까? '왜 그때 그랬을까?' 하고 후회를 하였겠습니까? 


제자들에게도 기회가 있었는데, 날마나 옆에 계실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도 좀 그렇게 할 걸' 지나고 나서 얼마나 후회를 하였겠습니까? 


제자들에게는 예수님보다는 다른 것이 더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소중했겠지만 다른 것도 함께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가 되는 그냥 그 정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전부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잘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든 다 드릴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기회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에 잘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지금 기회 있을 때 하지 않는 사람은 다음에도 또 하지 않을 확률이 99.999% 입니다. 살아보니 그렇지 않습니까? '다음에... 다음에...' 결심해 보지만 지나보니 안 되지 않습니까? 미루면 안 됩니다. 


있을 때 잘 합시다. 할 수 있을 때 잘 합시다.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 합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께 말입니다. 


가족도 그렇습니다. 이웃 형제 자매도 그렇습니다. 교회 공동체 식구들도 그렇습니다. 


헤어질 날이 옵니다. 떠날 때가 옵니다. 함께 없을 때가 옵니다. 


정말 있을 때 잘 합시다. 


굿모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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