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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와는 다른 관점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관점 즉, 예수님의 출생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시기까지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각 기록한 대상과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일대기를 기록하려고 한 관점은 갖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출생을 비롯해 공관복음과 중복되는 많은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좀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기록하였습니다. 특별히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영광'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영광', 문자 그대로는 빛을 반사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은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의 모습을,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낸다,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즉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영광,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영광, 하나님으로서의 그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복음의 강조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영광'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요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많은 영적인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11장 40절의 말씀도 그래야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0)


믿으면 무엇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다, 믿으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믿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믿으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장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 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요 1:50, 51)


이 보다 더 큰 일,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일, 즉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믿으면 그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 때문에 조금 길게 설명이 되었네요. 


오늘 2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이 사건도 바로 예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신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만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1절)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 앞으로 예수님께서 하실 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그렇게 바꾸시는 사역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새 사람으로, 새 피조물로 바꾸실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된 것처럼, 죄인이 의인으로, 세상에 속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3장의 니고데모도, 4장의 우물가의 여인도, 8장의 간음한 여인도,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죄인이었던 사람들, 모두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야! 신기하다... 분명히 물이었는데... 이게 어떻게 포도주가 되었지?... 처음에 있던 포도주보다 더 맛있는 포도주가 되었네.... 야 정말 신기하다...'


38년동안 중풍병으로 누워만 있던 자를 고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바다 위를 걸으셨습니다.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맹인을 고치셨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려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야! 신기하다!...' 기적 그 자체만 보면 안 됩니다. '믿으면 정말 그렇게 돼?...,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정말 그래?' 믿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그것만 보면 안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무엇을 보여 주시려고 이런 기적들을 행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신기한 일이 일어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아야 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기적을 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적 자체만 보았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그 일 자체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기해 했습니다. 자기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계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켜 주시고, 일을 해결해 주시고, 뭔가를 잘 되게 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십니다. 믿음으로 그 영광을 보고자 하는 자는 보게 됩니다. 하지만 기적만 바라고, 배부를 떡만 바라고, 어떤 일이 일어날까만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은 보지 못합니다. 곧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요한복음에 실제로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6)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자는 떠나게 됩니다.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난 사람은 변화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변화됩니다. 완전히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우리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 변화된 우리들, 이제 우리들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비추어 주신 그 빛을 우리를 통하여 반사하여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들, 예수님과 동행하는 우리들, 우리가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렇습니다. 


동행하는 길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입니다. 동행하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