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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섯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찬양 하나가 문뜩 떠오릅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 시절에 많이 불렀던 찬양입니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오 오 오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말해다오 오 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오 오 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생명이니
내게 오라 

내게 오라


지금 보니 이 찬양은 본문의 상황과 맞게 만들어진 곡은 아니네요.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눈 먼 맹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과의 대화 중 도마가 한 말에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영적 맹인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길을 찾는 모든 사람들, 진리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 뭔가 영적으로 답답함을 느끼지만 답을 찾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입니다.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진짜 길이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냐? 말 좀 해다오. 어디가 길이냐?


예수님께서 이제 곧 떠나신다는 말씀을 하시자 근심해 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근심하지 말라, 나는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다' 천국에 대한 소망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그 곳, 천국으로 가는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4절)


그러자 도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5절)


주님이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그곳으로 가는 길을 어찌 알겠냐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디를 가시겠다는 것인지, 그곳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섯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절)

 

이것은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길, 진리를 찾는 길, 생명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것입니다. '어디가 길이냐?'.... "내가 곧 길이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바로 그 길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에고에이미' 선언은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행하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과 연결됩니다. 좀 더 크게 보면,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두 사건,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난 사건과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를 만나게 되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거의 죽게 된 신하의 아들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사건입니다. 둘 다 예수님이라는 길을 통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참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두 사건에 보면 모두 길에 대한 이미지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동네에 있는 야곱의 우물까지 가시게 되었습니다. 유대를 출발하여 그 우물까지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그 때 마침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정오에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에 혼자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여인은 매일 같이 물을 길으는 그 길을 오갔습니다. 오늘도 그 길을 온 것입니다. 무거운 물동이를 들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삶에 지친 모습으로 오늘도 여인은 그 길을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어느 길인가를 오갑니다. 매일 같이 자신만의 길을 오갑니다. 같은 길을 수없이 오갑니다. 그 길이 어디를 향하여 가는 길인지, 무엇을 위하여 가는 길인지 모른채, 그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모른채, 사람들은 길을 오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생의 길에서 묻습니다. 어느 길인가를 수없이 오가다가 멈추어 서서 묻습니다.  


'어디가 길이냐?'


'도대체 어디가 길이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진짜 길이냐?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이냐?'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한 질문과 같습니다. 인생의 길을 잃은 여인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가치를 좇아 방탕하게 살던 여인입니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깨닫고자 목말라하는 여인입니다. 매일 같이 물을 길어 마시지만, 마셔도 마셔도 해갈이 되지 않는 갈급한 여인입니다. 그 여인이 말합니다. 


'예전부터 들어서 나도 아는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라는 분이 오시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을 나도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나의 목마름의 문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문제, 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을 압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요 4:25)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요 4:26)


"내가 그라"... '에고에이미'입니다. '내가 바로 메시아, 그리스도다'라는 것입니다. 


방황하던 인생의 길에서 어느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통하여 진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진리이심을 찾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또 길을 가셨습니다. 갈릴리에 이르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이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된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간청합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고 왕의 신하가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내려가는 길에 종들을 만나 아이가 살았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이 구지 그곳까지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말씀 한 마디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의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바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죽음의 상황입니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디론가 가야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사느냐 죽느냐 촉박한 순간입니다.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그때도 사람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어디가 길이냐?'


'어디로 가야 사느냐? 누구에게 가야 사느냐? 어디가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이냐?'


왕의 신하는 바른 길로 간 것입니다. 살 수 있는 길로 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로 가야 사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길입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야만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오가십니까? 맞는 길이십니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다"


'내게 오라'


'더 방황하지 말고 내게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