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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39:9-10)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도망가라! 최대한 빨리, 최대한 멀리, 도망쳐라!'


내 안에서 소리칩니다. 여기서 도망가라고, 이 상황에서 도망가라고, 이 사람들에게서 도망치라고, 마구 소리칩니다. 


니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문제야, 저 사람들 때문이야, 저 사람들만 벗어나면 돼, 그러니까 니가 그냥 피해, 다른데 가면 그만이야, 안 보면 그만이야, 더러우면 피하면 그만이야, 도망쳐!!


도망가면 해결됩니까? 피한다고 해결됩니까? 안 보면 됩니까? 다른 데로 피하면 정말 거기는 괜찮겠습니까? 


잠시는 괜찮겠죠. 시간은 벌겠죠. 아무도 모르니까, 거기서는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일단 여기보다는, 지금 상황보다는 나을거라고 생각이 되겠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어디로 도망을 간다는 겁니까? 누구로부터 도망을 간다는 겁니까? 


문제의 핵심을 놓친건 아닙니까? 본질을 빗나간건 아닙니까? 


나는 그대로인데, 정말 저 사람들만 피하면 되겠습니까? 정말 이 상황만 벗어나면 모든게 달라지겠습니까? 나는 그대로인데요. 


나와 주님과의 관계가 문제의 핵심 아닙니까? 내가 주님 앞에 살고 있는가가 본질 아닙니까? 


내가 문제 아닙니까? 내가 잘못한 거 아닙니까? 주님이 다 아시는데, 주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왜 자꾸 다른 핑계를 대는 겁니까? 


오늘 시편을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1절)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2절)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3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4절)


정말 그렇습니다. 주님이 다 아신다는 것 아닙니까? 내가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주님이 다 아신다는 겁니다. 


정말 나는 잘했고 다른 사람이 잘못한 거면 주님께서 해결하시도록 나는 가만이 있으면 되는 겁니다.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해시키지 않아도,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이 다 아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잘못한 것이면, 그것이 주님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면, 다른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내가 잘못한 것을 주님은 아신다면, 그러면 주님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주님 앞에서 잘못을 시인하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서 해결해야 되는데, 어디를 도망가는 겁니까? 왜 자꾸 다른 데를 쳐다보는 겁니까? 왜 자꾸 사람을 보는 겁니까? 왜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겁니까? 왜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겁니까? 


주님 앞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어디를 가도 소용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7절)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8절)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9절)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0절)


주님이 기다리십니다. 어디를 가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보셔야 합니다. 주님과 해결하셔야 합니다. 주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주님 앞에서 해결하셔야 합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두 팔 벌리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기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도망가지 말고 돌아와 품에 안기길 기다리십니다. 


나를 다 아시는 주님, 내 내장을 지으시고 모태에서 나를 만드신 주님(13절),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14절),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15절),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보시고 생명책에 기록하신 주님(16절), 그런 주님이십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생각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모래보다도 많아서 그 수를 셀 수가 없습니다(17, 18절)




도망가는 것이 방법이 아닙니다. 다른 데 바라보는 것이 방법이 아닙니다. 어떤 수도 어떤 방법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아닙니다. 어떤 다른 곳도 아닙니다. 


주님입니다. 주님께로 가셔야 합니다. 주님께로 방향을 돌리셔야 합니다. 


아무 말씀 안하시고 안아주시는 주님, 그 주님께 가셔야 합니다. 


그 품이 안전합니다. 그 품이 평안합니다. 그 품이 제일 좋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한 마디 물으실 겁니다. 


또 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주님이 계시고, 무엇을 하든 주님이 보고 계시는 우리의 삶, 이런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이번 한 주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 마음껏 누리소서!!


굿모닝입니다!!^^



시편 139편으로 만든 찬양, 너무 은혜로운 찬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