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1일(금) 본문: 이사야 1: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9절) 한 공동체가 기울고 소멸해 가는 과정을 보면 비슷한거 같습니다. 본질을 잃고 다른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전통이 누적되면서 비본질이 본질을 앞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는데만 급급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별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됩니다. 리더들은 구성원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데 급급하고,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생각하는 무리들로 구성원들이 나누어지게 됩니다. 유다가 멸망하는 과정도 그랬습니다. 본질을 벗어나 비본질이 중시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전통과 형식이 우선시 되었..
2017년 8월 10일(목) 본문: 시편 49:13-20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18, 19절) 사람이기에 당장 눈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살기가 쉬운 거 같습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또 그렇다고 인정도 하지만, 당장 앞에 있는 현실의 삶이 전부인양 살때가 많습니다.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 사람 신경쓰며 살게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칭찬도 하나님보다는 사람의 칭찬에 신경쓰이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는 책망은 그..
2017년 8월 9일(수) 본문 시편 49:1-12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0절) 이런 우스게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했던 두 재벌 회장이 모두 죽어 저 세상에서 만났답니다. "어이, 자네 오랜만이네, 결국 자네도 여길 오고 말았구만, 그런데 혹시 자네 5만원만 있으면 좀 빌려주게, 내가 급하게 오느라 지갑을 가져오지 못해서 말이야" 다른 회장이 대답했습니다. "아이고 참, 오래살고 볼일이네 그려, 자네 같은 사람이 돈 5만원을 빌려달라니, 허참...,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도 말일세, 갑자기 오느라 아무것도 못가져 왔다네, 5백원짜리 동전 하나도 없어" 오늘 시편에도 이..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마지막 일곱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은 "나는 포도나무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요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 15:1) 성경에 보면 좋지 않은 포도나무도 있습니다. 농부는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포도를 맺었다고 했습니다(사 5:2). 좋은 포도나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떤 열매, 어떤 포도를 맺느냐에 있습니다. 들포도, 먹지 못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좋은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위 그림과 같이 먹음직스러운 최상품의 포도열매를 맺는 것이 좋은 포도나무..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섯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찬양 하나가 문뜩 떠오릅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 시절에 많이 불렀던 찬양입니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한 눈 먼 사람이 소리쳤네 오 오 오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어디가 길이냐 말해다오 오 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예수님 그에게 대답했네 오 오 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생명이니 내게 오라 내게 오라 지금 보니 이 찬양은 본문의 상황과 맞게 만들어진 곡은 아니네요.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다섯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선언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표적을 행하시는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하나님으로서의 위대한 선언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입니다. 온 세상을 뒤집어 놓은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둘 중 하나입니다. 진짜 하나님이니까 하신 말씀이든지, 아니면 정상이 아닌 사람이 정신 나간 소리로 한 말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정상인 사람은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했다면 정상 취급을 ..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네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은 "나는 선한 목자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선한 목자'의 반대를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삯꾼'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삯꾼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삯꾼은 엄밀히 말해 목자가 아니다. 양도 제 양이 아니다. 그냥 돈 받고 일하는 자이다('a hired hand' 라고 번역하고 있다). 어떤 양이 자기 양인지 모른다. 양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양을 돌보지 않는다. 그냥 시간만 가라, 때 되면 돈은 나온다 하는 자이다. 그래서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자기 살자고 도망간다. 양이 먼저가 아니다. 양은 무슨 나부터 살고 봐야지 하는 자이다.이리가 양을 물어 가서 헤쳐도..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세 번째 '에고에이미' 선언은 "나는 양의 문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과 연결됩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 5:2) 바로 이곳입니다.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양을 끌고 들어올 수 있는 문이라 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이라 하였습니다. 이 양의 문을 들어가면 얼마가지 않아 베데스다 연못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다음 사진입니다. 물론 지금의 모습은 예수님 당시와는 다른 모습이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