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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1:9-2:3]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15절)

 

이런 황홀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정말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것이 정말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 맞습니까?

 

아가서의 사랑의 노래가 가슴을 너무 벅차게 만듭니다. 생각할수록 조여오는 이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무슨 이론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구원론도 칭의론도 교회론도.... 무슨 “론”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실제 사랑입니다.

실제 너무 사랑스러워 말씀하시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너무 예쁘다

너무 예쁘고 예쁘다

정말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어쩜 이리 눈이 예쁘냐

비둘기 같구나

보석 같구나

빛나는 별빛 같구나

 

주님의 이 말씀을 달리 어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무슨 이론이 필요합니까?

 

눈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그 눈을 보시며 너무 예쁘다 하십니다. 진짜라는 것입니다. 너를 안다는 것입니다. 네 속이 다 보인다는 것입니다. 너는 정말 예쁘고 예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진짜 예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가서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이 사랑의 고백을, 실제로 들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피부에 와 닿아야 합니다. 눈 앞에 이 그림이 보여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이 사랑을 만나지 못했기에 신앙생활이 힘든 것입니다. 그리 지치고 어려운 것입니다.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지 저건지 감이 안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사랑이 가슴에 밀려 들어오면, 이 사랑의 고백이 실제로 마음에 들려오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나도 바뀌고 세상도 바뀝니다. 남은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가 어디서 이런 사랑을 받아 보았습니까? 사람의 사랑은 잠시 뿐입니다.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영원히 이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변하기 때문입니다.

 

아가서의 노래를 쓴 솔로몬의 사랑도 그랬습니다. 이 여인과의 사랑을 영원히 지속하지 않았습니다. 그후에 수많은 여자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를 단지 남녀간의, 부부간의 사랑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가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을 들어야 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나를 위하여 기꺼이 죽으실 수 있는 사랑

나를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오실 수 있는 사랑

나를 위하여 독생자 아들도 주실 수 있는 사랑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한다

너를 쳐다만 보아도 좋구나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노라

 

주님의 이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는 자는 마치 ‘몰약 향주머니’를 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나오는 향기입니다.

 

그 향기가 나를 취하게 합니다. 그 향이 온 방을 채웁니다. 주변까지 흘러갑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13절)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품에 있는 우리는 그 향기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취한 자에게서는 그 사랑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의 향기가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아가서의 말씀이 너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아침입니다.

 

사랑이면 된 거 아닙니까?

이거면 충분한거 아닙니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의 이 사랑 앞에 그런 것이 다 무슨 문제입니까?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거울 한 번 보시고, 여러분의 눈을 그리 예쁘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고백으로 인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