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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1:1-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11절)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공격하고 피해를 주는 것도 죄이지만, 고난 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으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형제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형제끼리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 죄라는 것입니다.

 

오바댜에 보면 에돔의 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형제 이스라엘이 공격을 당하여 재물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고 죽임을 당하는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형제 에돔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하였습니다.

 

멀리 서서 방관하였습니다.

형제가 패망해 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입을 크게 벌리며 좋아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형제가 환난을 당하는 그 순간

그들도 성에 들어가 형제의 재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도망하는 형제를 붙잡아서

공격해 온 원수의 손에 넘겼습니다.

 

오늘 아모스의 표현대로 하면,

고난 당하는 형제를 긍휼히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원수로 인해 도망가는 형제를

뒤에서 쫓아가며 더 괴롭게 한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지 않고, 멀리 서서 방관하며, 속으로 잘 됐다 기뻐하고, 때는 이때라 형제의 고난을 이용해 자기의 이득을 취하고, 이런 모든 것이 에돔의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벌을 돌이키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불쌍한 자, 고난 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 하며 멀리 서서 방관하는 것도 죄입니다. 형제의 아픔을 기회로 삼아 이득을 취하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죄입니다.

 

왜 긍휼히 여기지 않을까요?

형제의 고난이 왜 은근한 기쁨이 될까요?

 

형제가 잘 되어야 좋은 것인데

왜 우리 저 깊은 속에는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까요?

 

어디 너 잘 되나 보자

그래 그럴줄 알았다.

샘통이다.

 

다 죄입니다. 우리 안에 숨겨 있는 추악한 죄입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속은 시커먼,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죄입니다.

 

긍휼은 누구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에게 잘하는 사람? 평소에 좋았던 사람? 죄 없는 사람? 아닙니다.

 

긍휼은 죄인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 싫은 사람, 미운 사람, 괴롭히는 사람, 상대하기 싫은 사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 긍휼입니다.

 

그래서 긍휼인 것입니다. 긍휼히 여길 수 없는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 그것이 주님의 긍휼입니다.

 

우리가 그런 긍휼하심을 받은 자들 아닙니까?

 

얼마나 가증스러우셨겠습니까?

얼마나 상대하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보실 때 말입니다.

 

그런 나를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남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자신도 긍휼히 여김 받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내 일 아니라 하며 방관하는 것이 죄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집시다.

 

그는 나를 미워할지라도

나는 긍휼히 여깁시다.

 

함께 아파합시다.

함께 울어줍시다.

그리고 잘 되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줍시다.

 

주님 앞에 사는 자들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속으로

진심으로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