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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께서 두 번 연달아 아주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들, 사고가 일어나 죽은 자들, 그들이 너희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렇게 죽은 줄 아느냐?' 라고 하신 후에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3, 5절)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


그리고는 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었는데 삼 년이 되어도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포도원지기에게 찍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열매가 없으니 땅만 버리지 말고 찍어버리라는 것입니다.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간청합니다. '금년 일 년만 그대로 두고 보소서, 내가 열심히 거름을 주고 가꾸겠습니다, 그러면 분명히 열매가 맺힐 겁니다. 만일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에 찍어버리소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주신 비유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 벌써 찍어버렸어야 하는 나무, 그 나무에게 열매를 맺도록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간청하여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포도원지기가 열심히 거름을 주고 가꾸고 있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이십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예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회개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찍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직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도, 아직 받아들일 기회를 주시는데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직접하시는 경고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경고를 무시합니다.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망한다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무너져 가는 건물 안에 있으면서, 가라앉고 있는 배 안에 있으면서, 이제 곧 닥칠 재앙을 깨닫지 못합니다. 


못 들었다면 억울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기회가 전혀 없었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들었습니다. 기회가 수없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무시했습니다. 가볍게 여겼습니다. 나는 아닌 줄 알았습니다.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기회를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도 이와같이 망한다!'


회개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같이 망한다는데, 회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회개한 자입니까? 나는 회개했습니까? 


쉽게 표현하면, 회개는 가던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저 길에서 이 길로 가던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만 바꾸어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바꾸는 것입니다. 가던 방향을 돌아서서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이 길과 저 길은 비슷하지도 중복되지도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길도 아닙니다. 이 길을 가면서 저 길도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닙니다. 잠시 여기갔다 저기갔다 옮겨다닐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한 번 바꾸면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회개했는가? 길을 바꾸었느냐는 것입니다. 기웃거리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가는 완전히 바꾸어야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던 그 길을 포기하고 이 길로 들어섰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이 길만 가겠습니다.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저 길을 바라보지 않겠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직 서툴지만, 아직은 잘 할 자신이 없지만, 열심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뒤를 쳐다보지 않고 이 길만 가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새로운 길로의 출발을 시작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길에 들어서서 결승점에 도달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여졌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되어 완전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 보겠다고, 열심히 해 보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이 길에 들어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없이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개없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을 바꾸지 않고, 그냥 저 길에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그 길을 가고 있으면서, 자기도 예수님을 안다고, 들어보았다고, 교회에 나간다고, 구원 받은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회개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회개없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이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만 따라서 살겠다는 다짐없이는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말로 한 번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이제 새로운 삶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13장 후반부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23절)    


이것은 이런 질문입니다. '아니, 그럼 예수님 구원 받는 사람이 많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회개하고 길을 바꾼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실제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된다면... 구원 받는 자가 적다는 말씀입니까?'


여러분들도 궁금하신 질문 아닙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저의 대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답이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4절)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5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6절)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7절)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8절)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 좁은 길로 가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문을 닫은 후에 들어오지 못한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 직접 배우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이렇게 말하여도 주님이 모른다고 할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의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이런 분들은 물론 없을 줄 압니다. 다 회개하시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분들임을 제가 압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저 오늘 주시는 말씀을 순서대로 쓸 뿐입니다. 여러분들의 감정을 상하게 해 드리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겁 주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확인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나를 비추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회개했는가? 너는 회개한 자인가?


너는 길을 바꾸었는가? 


길목에 서서 고민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는데, 아직도 저 길을 쳐다보며 망설이고 있지는 않는가? 


아직도 저 길을 쳐다보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이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좁은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같이 가시는 길입니다. 동행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일단 들어서면 저 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행복과 영광이 있는 길입니다. 랄랄라 찬송하며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함께 격려하며 이 길을 가십시다. 힘들어 쳐지는자 부축하며 함께 가십시다. 


그리고 아직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한 자, 아직 두 길 사이에서 망설이는 자, 그들에게 이 길이 얼마나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길인지 보여줍시다. 


동행하는 이 길을 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