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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시편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만물 가운데 운행하시며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너무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신"(1절) 하나님이십니다.


온 천지만물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높은 산, 빛과 구름과 바람.... 모두 다 하나님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산 골짜기에 졸졸졸 시냇물을 흐르게 하사(10절) 각종 들짐승이 그 물을 먹고 살게 하십니다(11절). 공중의 작은 새도(12,17절), 산양과 너구리(18절), 젊은 사자도(21절), 바다의 물고기도(25절), 다 하나님의 손길로 살아갑니다. 


특별히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가축이 먹는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십니다(14절).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십니다(15절).


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가꾸시고 보존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중요한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9절 말씀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9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 5:22) 


만물이 있어야 할 각자의 자리를 정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산과 바다와 땅이, 다 있어야 할 위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자리에서, 정해 놓으신 그 경계의 선을 넘지 않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넘지 말아야 할 경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어떤 자연 만물도 스스로는 그 경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동안 존재하다가 거두어 가시면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만물입니다(29절). 하나님이 흔드시면 땅이 진동하고 산에서 연기가 납니다(32절). 지진과 화산 폭발..., 모든 자연현상이 다 하나님의 허락하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자연현상'이라는 표현은 틀린 말입니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요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는 싸인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이 법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람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선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다른 만물에 주시지 않은 한 가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다른 만물에게는 경계를 스스로 넘을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경계를 넘을 수도 있고 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경계를 정하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강제로 억지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그 경계를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악과'입니다. 


그 경계를 넘으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어긴 죄가 됩니다. 죄인이 되고, 그곳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죄의 종이 됩니다. 죄의 속박에 갇히게 됩니다. 


자유를 잃어버린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경계를 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죄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실제는 자유가 없습니다. 죄가 이끄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만 갇혀 살아야 합니다. 


경계를 넘어 죄인이 된 우리를, 죄의 종이 되어 죄에게 이끌려 살던 우리를, 자유를 잃어버린 우리를, 해방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다시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경계를 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원래의 상태로 다시 빼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 형상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가 하나님이 넘지 말라고 정하신 경계를 다시 넘어가는 것은 스스로 가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가 싫어서 다시 가서 종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종에서 해방받고 자유인이 되었는데 스스로 가서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자유인줄 아는데,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해방받은 자임을, 구원받은 자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경계를 넘어가면 자유롭고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괴롭습니다. 힘들고 불안해집니다. 평안과 기쁨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일을 하고 나면 그렇게 됩니다. 어두움이 점점 나를 덮고 사망으로 죽음으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이끌고 갑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됩니다.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이런 불행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정해 놓으신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길입니다.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누리는 것이 능력입니다. 


경계의 선을 넘어 가셨습니까? 실수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셨습니까? 죄를 지으셨습니까? 


십자가의 주님 앞으로 다시 나오십시오. 나아와 회개하고 다시 엎드리십시오. 보혈의 능력이 다시 씻어주실 것입니다. 보혈의 은혜가 다시 덮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그렇게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시 결단하십시오. 주일예배에 주신 말씀처럼, 나도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다시 결단하십시오. 죽는 것이 곧 사는 길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시게 해야 합니다. 


법 아래가 아니라 이제는 은혜 아래 살게 하신 그 은혜가 놀랍고 감사합니다. 벌레 만도 못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 주신 그 은혜가 무한히 송구스럽습니다.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그 인자하심 앞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주님 송구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은혜입니다. 무한 영광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하고, 십자가 앞에 서고,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고 계시는 주님과 깊이 만나시는 이번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아침, 감사한 아침, 오늘도 여러분 모두 진짜... 굿모닝입니다!!^^


<주 보혈 능력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