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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9:26-27)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살다 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생깁니다. 별 사람 다 만납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 좀 이상한 사람, 만나기 싫은 사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별 사람 다 만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다가 사람 때문에 어려운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사람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제일 힘듭니다. 사람에 대해 실망하는 일이 생깁니다. 공격을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싸우고 다투는 일도 생깁니다. 모함과 비방과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기도 당하고 억울한 일도 당합니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정상이라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그 사람을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서로 통하고 맞으면 자주 만납니다. 필요하고 이득이 되면 가까이 지냅니다. 


그러다가 서로 오해할 일이 생깁니다. 섭섭한 일이 생깁니다. 실망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다 자기 중심으로 보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입장에서 볼 때,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살면서 당한 어려움을 배경으로 지은 시입니다. 다윗도 별 사람 다 만났습니다. 다윗을 어렵게 한 사람, 시기하고 미워한 사람, 모함하고 비방한 사람, 궁지에 몬 사람, 죽이려고 한 사람 .... 온갖 나쁜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지은 시입니다. 일명 '저주시'라고도 하는 이 시편을 읽어보면, 어떻게 이렇게 까지 저주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미우면, 얼마나 원수같으면 이렇게 까지 저주하는가, 정말 다윗의 그 입장이 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표현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편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나를 어렵게 하는 어떤 사람을 대입해서 읽으면 안됩니다. 사람 자체를 저주하는 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성경에 포함되어 있을리가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이 시편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어려움 앞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중요한 교훈 두 가지를 오늘 시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다윗은 이런 일을 자신의 영혼을 대적하는 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나의 대적들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 (20절)


사람이 한 일입니다. 사람이 다윗을 공격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사람을 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뒤에 있는 진짜 대적이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 대적의 목적은 다윗의 영혼입니다. 영혼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몸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다윗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그 뒤에 진짜 대적이 있습니다. 그 진짜 대적이 노리고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입니다. 영혼을 병들게 하여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것입니다. 당하면 안됩니다. 그 노림수에 속으면 안됩니다. 


둘째, 다윗은 이런 일을 주님의 손으로 해결하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상황 가운데서 구해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6절)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7절)


이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을 토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변명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있는 모든 생각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불쌍하고 연약한 모습을 하나님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도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그 어려운 일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갑니다.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진짜 하나님 앞에서 삽니다. 


"주님의 손이 하신 일인 줄 알게 하소서" 정말 그렇습니다. 주님의 손이 하셔야 완벽합니다. 사람이 하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하시면 모두가 다 살아납니다. 주님이 하시면 완벽하게 해결이 됩니다. 모두가 다 주님 앞으로 가면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주님 앞으로 가면 다 해결됩니다. 주님의 손이 해결하십니다. 


우리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 자들입니다.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부활이 있습니다. 골짜기로 내려갈 때가 있으면 산 정상에 오를 때도 있습니다. 사망을 지나면 생명의 부활을 만나게 됩니다. 


완전히 죽어야 부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답답합니까? 억울합니까? 길이 없습니까? 그런 상황일수록 내가 죽어야 합니다. 완전히 죽으면 부활을 경험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의 생명이 살게 됩니다. 


주님도 사흘 동안 무덤에 계실 때가 있었습니다. 사망을 경험하셨습니다. 깊은 스올, 죽음의 골짜기로 내려 가실 때가 있었습니다. 부활이 있음을 아셨기에 기꺼이 그러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야 우리를 그 사망의 골짜기에서 구원하실 수 있기에 기꺼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월호의 참사 가운데에도.... 시간이 지나면 부활의 소망이 모두를 다시 살리게 될 줄 믿습니다. 


다시 힘을 내십시다. 굿모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