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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3:1-6]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1절)

 

어리석은 자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

악을 행하는 자

 

지각이 있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

선을 행하는 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가 누구입니까? 반대로 누가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지각이 있는 자입니까?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 하나님이 있다 하는 자, 무엇으로 구분합니까?

 

오늘 시편을 보면 그의 삶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이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노래합니다.

 

그럼 반대로 누가 하나님이 있다 인정하는 자입니까? 그의 삶에 선을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입으로 말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생각에 단지 하나님이 있다고 인정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삶을 보아야 하나님을 있다 하는 자인지 없다 하는 자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린다 하여도, 입으로 찬송을 부르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 하여도, 그의 삶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곧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살게 됩니다. 앞에 있는 사람만 의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이 상황만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 통할 수 있습니다. 과장과 협박이 통합니다. 큰 소리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아부하면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편법을 쓰면 쉬울 수 있습니다. 눈 한 번 감으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약한 사람은 무시하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굽신거리고,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늘 시편 4절의 표현대로,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떡 하나 집어 먹듯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고 쉽게 다루고 억압하는 자, 누가 그런 자입니까?

 

그가 바로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살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머리로는 하나님을 아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심을 의식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훈련의 절정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 제자훈련을 받는 이유, 큐티를 하는 이유, 모든 훈련의 목표는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훈련 과정을 다 마쳤다 하여도, 오늘 하루 하나님을 의식하며 그분 앞에서 사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다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동행하기 위하여, 오늘 하루의 삶을 인도함 받기 위하여, 오늘 하루 죄에 넘어지지 않고 믿음으로 이길 능력을 받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큐티를 하고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리석은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며 마음대로 살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랬던 우리를 하나님을 의식하고 동행하며 사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완벽히 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자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나도 그런 인생이었는데, 나도 그저 그 길로 가다가 멸망하고 말 인생이었는데, 건져 주셔서 이제는 하나님을 따라서 사는 자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삽시다.

더 조심하며 삽시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님 앞에 하듯 조심합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