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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9:1-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8절)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 어떠했느냐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히스기야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를 많이 안타깝게 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히스기야가, 그동안 그토록 하나님을 잘 섬겼고 기도의 사람이었던 그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결국 이 나라가 바벨론으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이고, 왕의 자손이 잡혀가서 바벨론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더니, 히스기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괜찮다는 말씀이군요, 나중에 자손의 때에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때는 뭐 어떻게 되든 괜찮습니다, 지금 평안하고 견고하니 괜찮습니다.'

 

왕이 할 수 있는 말입니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자기는 할 만큼 다 했으니까, 가질 만큼 다 가졌으니까, 부귀 영화 다 누려 보았으니까, 앞으로야 어떻게 되든 지금 자기만 괜찮으면 된다는 것입니까?

 

히스기야의 마지막 잘못이 무엇입니까?

 

첫째, 교만해 진 것입니다. 앗수르의 위협도 지나고, 자신의 죽을 병도 낫고, 모든 어려움이 다 지나고 난 다음에 교만해졌습니다.

 

바벨론 왕이 보낸 사신 앞에서 우쭐하여져서 자신의 부와 세력을 자랑하였습니다. 바벨론과 유대 관계를 형성하려 했습니다.

 

둘째, 미래를 보지 못하고 안일해 진 것입니다. 당대에만 평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후대는 생각하지 않는, 지도자로서의 안목을 갖지 못한 것이 또한 그의 잘못입니다.

 

역대하에 보면 이 때의 상황에 대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 하셨더라" (대하 32:31)

 

히스기야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시험 하셨다고 했습니다. 교만하고 안일해 진 그의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세력을 믿고, 다른 나라와 협력하려고 하는 그의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떠나셨다 했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제의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변함없는 신실함이 중요합니다. 어제의 화려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변함없는 충성, 변함없는 겸손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왜 그렇게 변하는지 말입니다. 히스기야 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고통과 환난 중에는 그렇게 엎드려 겸손하게 부르짖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식어지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좀 상황이 나아지고, 좀 자리가 올라가고, 좀 가지게 되고, 뭐 좀 그렇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달라지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나는 다 해 봤다고, 다 가져 봤다고, 그러지 못한 사람 무시하고, '그거 다 필요없는 거야, 내가 해 보니 별거 아니야' 라며 못해 본 사람 앞에 훈계나 하고, 교만해지고 우쭐해지고 남 쉽게 무시하는 것이 우리들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겸손한 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마지막에 내려올 수 있는 것, 마지막에 다 버릴 수 있는 것, 마지막에 보여지는 능력이 진짜 능력입니다.

 

나만 평안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지도자입니다. 지금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갈 수록 더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겸손한 자 되도록, 마지막에 진짜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지금이 아니라 다음을 생각할 줄 아는 자 되도록 더욱 노력합시다.

 

마지막까지 겸손하신 분, 마지막까지 충성하신 분, 마지막까지 변함없으신 분,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그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