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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0:1-15]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3절)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가, 정리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형식이 중요한가 내용이 중요한가와 같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는 두 말 할 필요없이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가장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흠 없고 점 없는 것으로, 가장 살찌고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격식과 예의를 갖추고 질서와 형식을 지켜서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이 하나님께도 최상의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드려야 하나님께 최상의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드린 제물 자체로는 결코 최상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최상의 것에 최선이라는 내용을 담아야 진정으로 최상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선을 담은 최상의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마음과 정성과 노력을 쏟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자는 최상의 것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최선을 다한다 하면서 '마음만 있으면 되지 뭘 드리면 어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상의 것을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선이 빠진 최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시편 50편에도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내가 수소의 고기가 필요하겠느냐

내가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내가 그 고기와 피가 필요해서 바치라고 한 것이냐

 

아무리 훌륭한 제물을 바쳐도 거기에 무엇이 빠졌다는 말씀입니다.

 

감사가 빠졌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존중히 여기는 신실한 삶이 부족합니다. 어려울 때에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뢰가 부족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깝지 않습니다. 마음이 멀리 있습니다. 마음과 정성과 노력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형식적으로 그냥 짐승을 잡아서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식이라는 그릇은 있는데 그 안에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최상의 것을 드린다고 형식적인 행동은 취하고 있지만 최선의 마음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실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는 예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 기도, 예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최상의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것이 최상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결단의 마음없이, 예배자로서의 부족한 삶에 대한 회개와 반성없이, 심판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 없이, 그저 노래하고 예배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저 음악이 좋아서,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자기 만족에 의하여 노래만 열심히 부르는 건 아닌가요?

 

오래 된 습관과 전통에 의하여 그저 늘 하던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내가 그 수소의 고기를 먹겠느냐

내가 그 노래 소리를 듣겠느냐

내가 그 화음 소리 자체를 원하겠느냐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는 찬양과 예배가 하나님을 가장 슬프게 만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한다는 것이 오히려 책망을 들을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보다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하신 것입니다.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제물과 형식 자체로는, 노래와 예배의 행위 그 자체로는 안됩니다.

 

최선을 담은 최상이어야 합니다.

 

비본질이 본질을 앞서면 안 됩니다.

 

형식의 그릇은 내용을 잘 담을 때 빛이 나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드리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