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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2일(화)

본문: 이사야 19:16-25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22절)

 

 

성도가 고난의 과정을 지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고난 없이 성장하고, 고난 없이 바른 길만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을 통해 죄인됨을 깨닫고, 연약함을 깨닫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부서져 봐야 잘못된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그때 그 선택이, 가던 그 길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의 과정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이 없이는 계속 빗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죄인된 우리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자신이 보입니다. 고난을 통해야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중심을 잡고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이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단지 과정이기에, 고난 자체가 끝이 아니기에, 고난을 통해서 목적하는 바가 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고난을 허락하시지만 반드시 다시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래 상태, 아니 그전보다 더 성장한 상태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시키시는 것, 그것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목적입니다. 

 

고난 중에 있는 자가 회복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애굽을 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저들이 떨며 두려워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흔드시는 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은 보호하시는 것을 봄으로 말미암아, 죄를 범한 애굽에 대하여 정한 심판의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저들이 두려워 떨었다 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어떤 징계를 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흔드시는 손임을 깨닫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징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 두렵게 되는 것은 좋은 증상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는 것이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보이지 않고, 앞으로 심판하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들지 않는 것이 훨씬 무섭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것,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 죄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그것이 전혀 두렵지 않는 것,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 그래서 계속해서 그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 그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는 것이 하나님께로 부르시는 좋은 징조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라는 것을 알고, 회개해야 함을 알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음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 마음 가운데 이미 일을 하고 계신다는 징조입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이 들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과정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20절)

 

그들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부르짖을 때에 구원자를 보내셔서 건지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고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이 들고, 부르짖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은혜입니다. 고난 중에 주시는 은혜입니다. 다시 회복시키고자 부르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리고자 하는 마음, 가서 부르짖어야 살 것 같은 마음, 하나님께 매달려 살려달라고 애원하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을 소멸시키면 안됩니다. 살리고자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 고난을 끝내고 다시 회복시키시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난 중에 제일 안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고난 중에는 기도부터 식어버립니다. 그 상태로 오래가면 안 됩니다. 기도가 안 되는 것은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부터 살려야 합니다. 기도가 살아나면 다른 것이 다 살아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살아야 고난도 끝나고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살면 마음이 살고 그러면 찬송도 나오고 예배도 살게 됩니다. 예배가 살아야 삶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고난 중이라도 부르짖게 하심이 큰 은혜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이 고난을 지나가면 그만큼 우리는 정금과 같이 단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습니다. 고난 없이 성장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고난은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다만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유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게 되는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고난 당함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귀하게 사용하시고자 단련시키시는 과정입니다.

 

고난을 지나 정금같이 단련되시고

남은 인생 귀하고 멋있게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