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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14-29]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렇게 묻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에는 자기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나타났었는데 이번에는 왜 안 되었느냐는 겁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 6:12,1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각 마을에 보내시며 전도하게 하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에는 제자들에게도 많은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이 나타났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와서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달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돼지 않자 왜 안 되는가 하고 서로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전에는 너희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왜 못하느냐, 그때 그것이 모두 사실이냐, 하는 변론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 본인들도 의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고 집에 들어가신 후에 조용히 물은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주님의 대답이 이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없다, 기도로 이런 능력이 나가는 것이다”

 

그때에는 제자들에게 나타났던 능력이 왜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제자들이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기도’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아직 예수님을 닮은 기도 생활이  없었습니다. 습관을 따라 규칙적인 기도 생활이 없었습니다. 

 

그때에는 전도 훈련을 위해서 주님께서 특별히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한 번 주셨다 하여 그 권능이 항상 자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모든 사역에는 항상 기도가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매일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도 동일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약해졌습니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없어졌습니다. 매달리고 간청하는 기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변론은 많은데 기도가 없습니다. 공부는 많이 하는데 기도가 없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아는데 엎드려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 간청하는 기도, 부르짖는 기도, 통회하는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하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부르신 자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하늘의 능력을 힘입는 통로입니다. 기도하는 자, 기도로 능력을 힘입은 자, 그가 쓰임 받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야 다른 길이 비로소 열릴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없느니라!” 

더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