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묵상 본문: 사 46:1-7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5절)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느냐?

누구와 짝하여 함께 이름을 거론하느냐?

누구와 비교하면서 서로 같은 신이라 하느냐?

 

맞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매우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입니다. 하나님과 어떤 우상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바벨론의 우상에 깊이 물들어 있는 저들의 마음을 그곳에서부터 빼내시기 위하여 친히 그렇게 모욕적인 비교를 해가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들이 어깨에 메고 숭배하던 우상들이 다 엎드려졌고 구부러졌다. 피난 가는 길에 수레에 싣고 가게 생겼다. 수레를 끄는 짐승들의 무거운 짐만 되게 생겼다. 바벨론이 멸망하는 이 난리 통에 바벨론을 구원하지는 못할망정 백성들과 함께 수레에 실려 도망가게 생겼다.

 

그 우상들이 도대체 무엇이냐? 생각이 있으면 생각 좀 해 봐라. 사람들이 금, 은 가져다가 도금장이에게 주고 만든 것이 아니냐? 자기들이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신이라고 엎드려 경배하는구나.

 

신이라 하면서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여 사람이 어깨에 메어다가 처소에 두어야 하고, 또 거기에 두면 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신이라 할 수 있느냐? 부르짖어도 응답도 못하고 고난에서 구원하지도 못하는 그 돌덩어리, 금덩어리가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느냐?  

 

한 마디로 '우끼는 거 아니냐?'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우상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것이 더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우상은 사람들이 만들어서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이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너희들이 섬기는 그 우상이다.

 

그러나 나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가 배에서 태어날 때부터 너희를 안고 있었고 너희를 엎고 키웠다. 너희가 노년이 되고 백발이 될 때까지 너희를 품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내 백성이니 나는 너희를 평생토록 업고 품고 구하여 낼 것이다. 

 

나는 너희가 메고 다녀야 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백성들을 안고 엎고 품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어찌 나를 그런 우상들과 비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찌 감히 같이 이름을 거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사야 후반부 40장부터는 회복과 구원의 말씀이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회복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토록 반복하여 우상에 대하여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몸만 여기서 저기로 옮기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만 포로 생활에서 자유를 얻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복은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상을 빼내는 것입니다. 깊이 물들어 있던 바벨론의 신과 문화에서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빠져 나와야 합니다. 장소적인 예루살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 죄와 세상의 포로 생활에서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백성들의 마음에서 우상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우상과 하나님을 비교하는 모욕을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의 수치와 모욕과 고통까지 당하게 하셨습니다. 안고 엎고 품고 계시는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돌덩어리에 불과한 우상과 비교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사야의 회복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간절한 구애의 말씀입니다. 죄송하고 황송하고 염치없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시기까지 낮추시고 비우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서 전부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이나 아버지의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첫째 아들이나, 그 아들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탕진하여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과 비교하는 수치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를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는 그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품에 안고 있는 사랑스러운 젖먹이 아이와 같은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아버지 하나님,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야 합니다.

 

내 마음 안에 여전히 우상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을 세상의 우상으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야 합니다.

 

땅의 것은 다 우상이라 하였습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다 우상입니다.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거짓말도 새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땅에 속한 우상입니다. 지나치면 다 우상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돈, 명예, 권력, 배경, 자녀, 취미, 등등... 내가 조절할 수 없고, 이끌려 다녀야 하면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를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은 다 우상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세상에 속한 우상들을 하나님과 함께 마음에 모시고 비교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누가 더 나에게 유익한지, 누가 더 나를 기쁘게 해 줄지 비교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누구와 나를 비교하느냐?'

'나를 누구와 짝하여 너희 마음에 함께 둘 수 있느냐?'

 

우리에게 필요한 회복도 이것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