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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9일(화)

본문: 이사야 10:1-11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1, 2절)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한 것이 사람의 일반 심리입니다. 세상 살다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경험입니다. 나보다 강하고 힘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다릅니다. 나도 모르게 그것이 몸에 베어 있습니다. 

 

강자는 더 강자가 되어가고 약자는 더 약자가 되어 갑니다. 세상의 구조와 사람들의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 점점 더 그리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강자의 대열에 들기 위해서 강자 앞에서 아부와 아첨을 해야 합니다. 줄을 잘 서야 합니다. 강자는 더 강자가 되기 위해서 약자를 이용해야 합니다. 약자의 것을 가져가야 강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중요한 세상이 아니라 성공과 출세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약자는 무시 당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성공하면 대우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공하기 위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람을 이용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필요할 때는 이용하고 그런 후에는 돌아서서 버리고, 배신이 당연시 되는 삭막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왜 불의한 법을 만들어서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느냐? 왜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느냐? 왜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느냐?

 

멸망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의 부패한 지도자들이 보여준 모습입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유리한 법을 만들어서 가난한 약자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들은 다 가지고 누리면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있는 작은 권리 마저 빼앗았습니다. 자기들 배불리기 위해서 세상에 과부와 고아의 그 작은 것을 약탈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과부와 고아의 하나님이라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말씀합니다.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은 그런 자들과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특별히 나보다 약한 자들에게 그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어서 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내가 아니어도 남도 하는 일입니다. 

 

약자들, 외로운 자들, 소외된 자들, 병든 자들, 혼자서는 무엇을 하기에 어려운 자들,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자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먼저 그런 자들을 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약 1:27)

 

세상에 물들면 고아와 과부를 돌볼 수 없습니다. 약자에게 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앞에 진실로 경건한 자들,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자들, 그들은 고아와 과부, 약자들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자들이라 말씀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거룩함이 아닙니다. 화려한 예배당과 잘 갖추어진 외형적 모습이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그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여 있는가, 그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가, 주님의 마음으로 약자들을 불쌍히 여기는가, 주님의 아픈 마음이 그에게도 그대로 아픔인가, 이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환영받을 수 있는 교회, 부한 자도 가난한 자도, 배운 자도 그렇지 못한 자도, 높은 자리에 있는 자도 그렇지 않은 자도, 그가 강자이든 약자이든, 그가 어떤 사람이든, 눈치보지 않고 환영받는 교회, 따뜻한 교회, 누구든 대우받고 소중히 여김받는 교회,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아니겠습니까? 

 

기득권이 없는 교회, 텃세가 없는 교회,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는 교회, 누가 먼저이냐 따지지 않는 교회, 다 주는 교회, 다 양보하는 교회, 다른 사람을 먼저 세워주는 교회, 그것이 주님이 진짜 원하시는 교회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교회가 있겠는가? 죄인인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안 되겠지요, 어렵겠지요, 어쩌면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나 목표는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커지기를 바라는 교회, 번듯한 교회당 가지고 외형적 시스템 잘 갖추어진 교회가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먼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겠습니다. 저부터 놓겠습니다. 저부터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저부터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임을, 목표가 아니라 사람이 소중함을 새기고 또 새기며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새 그림을 그리도록 하얀 백지를 주셨습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 함께 그려가면 좋겠습니다. 진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세우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가다보면, 먹물도 뭍고, 찌꺼기도 뭍겠지요. 그럴 때에 다른 누군가가 그 위에 예쁜 물감을 입혀서 아름다운 그림이 되도록 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완성되어 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하면서 함께 이 길을 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함이 행복입니다. 

 

오늘도 활짝 웃으시며,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