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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3: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요즘 시편을 묵상하면서 위안이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입니다. 다윗도 흔들립니다. 번민하고 근심합니다. 탄식합니다. 울부짖습니다. 다윗에게도 환난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서 중요한 또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실제로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고백처럼, 영적인 눈이 어두워 질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잠을 자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의 상황만 보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어려움만 보고, 눈 앞에 보이는 원수만 보고, 두려워 할까봐 염려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이 너무 크니까 앞에 보이는 원수의 공격이 너무 세니까 그 뒤에 있는 영적인 세계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돕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숨어 계신 것 같습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믿음이 약해지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사망의 깊은 잠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나의 눈을 밝히소서" 다윗이 부르짖습니다. 앞에 있는 문제와 어려움이 아니라 원수의 공격이 아니라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부르짖음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돌보고 계시고 지키고 계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찬송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애원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현실의 어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공격하는 원수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부르짖습니까? 무엇을 실제로 염려하고 있습니까? 앞에 있는 문제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되는 일만, 공격하는 사람만 보이지는 않습니까? 

영혼의 눈은 더 어두워지고 점점 사망의 잠으로 빠져 가고 있는데도, 그 문제보다 현실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원수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공격하는 사람이 진짜 대적이 아닙니다. 뒤에 있는 마귀가 진짜 원수입니다. 그 원수가 노리는 것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잠을 자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영혼의 눈은 더욱 밝아야 합니다. 진짜 볼 것을 보아야 합니다. 사망의 잠에서 깨어 어두운 현실 가운데서도 마음은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더욱 바라보고 구원을 베푸실 그분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엡 5:14)  

영적으로 사망의 잠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만이 모든 것이 해답입니다. 우리만의 비법입니다. 

또 한 주간의 시작입니다. 이번 주간도 우리의 마음은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서 찬송을 흥얼거리며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더 가까이 오라 부르시는 아침, 감사한 아침, 오늘도 여전히 모두 굿모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