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 64:5) 그들은 악한 목적으로 서로 격려하며 남몰래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보리요 하며 

성경에는 의인과 악인의 대조가 많이 나옵니다.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입니까?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성경의 기준은 세상과 다릅니다. 

오늘 시편에 그 기준을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누가 우리를 보리요" 라는 표현입니다. 

"누가 우리를 보리요" 라고 생각하며 사는 자가 성경이 말하는 악인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을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 없이, 그저 그렇게 세상을 따라서 사는 자가 바로 악인입니다. 

그들은 악을 꾀합니다(2절). 무슨 일이든 꾀하듯 합니다. 정당한 일이 아니니까, 드러나면 안되니까 꾀합니다. 음모를 꾸밉니다. 몰래 소동을 일으킵니다. 

악한 말, 독한 말을 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입니다(3절). 말이 칼과 같습니다. 화살과 같습니다. 말마다 찌릅니다. 상처를 줍니다. 말로 사람을 완전히 넘어지게 하고 실족시킵니다. 말로 벌써 그 사람을 죽입니다. 

비열하게 숨어서 행동을 합니다(4절).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공격합니다. 뒤에서 공격합니다. 반칙과 편법과 술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씁니다. 

악한 일을 꾸미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격려합니다(5절). 몰래 올무를 놓고서 서로를 위로합니다. '괜찮아, 누가 우리를 보겠어?, 아무도 몰라, 잘 될거야, 다 이렇게 하는 거야, 우리의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거야'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악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자주 범하기 쉬운 실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을 잊는 것입니다. 아니,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마치 하나님이 안 보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개념이 머리에는 있는데, 내 행동과 삶에 적용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미 습관이 되어서 고치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이 마비가 되어 이것이 문제라고 잘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보리요'가 아니라 '주님이 항상 보시는데' 라고 되뇌이며 살아야 합니다. 알고만 있는 것은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연결이 되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의인은 하나님 앞에 사는 자들입니다.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자들입니다(10절). 세상에는 악인들이 득실대고, 악이 성행하지만, 그 악을 바라보며 실족하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여 있는 것입니다. 꾸미고 꾀하고 속이고 숨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정직하게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잠 5:21)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모든 사람의 길은 하나님의 눈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길을 평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사시는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앞이라서 오늘도 정말 행복한 아침입니다. 
오늘도 힘차게! 모두 굿모닝입니다!!^^

'아침묵상 2017 이전 >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66편 - 2014년 3월 7일  (9) 2014.03.08
시편 65편 - 2014년 3월 6일  (5) 2014.03.07
시편 63편 - 2014년 3월 4일  (0) 2014.03.06
시편 62편 - 2014년 3월 3일  (0) 2014.03.06
시편 61편 - 2014년 3월 2일  (0) 201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