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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본문: 사 53:1-12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0절)

 

53장은 이사야 전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가장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메시아는 고난받는 종으로 오셔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회복과 구원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알기에 그래도 구절구절이 조금은 선명하게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들었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짙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이 말씀이 그저 막연하고 희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시는 메시아는 왜 멸시와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지, 왜 그는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런 힘도 없이 그렇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오신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엄연히 기록된 이사야의 이 말씀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못 보는 소경처럼, 아무 소리도 못 듣은 귀머거리처럼, 여기에 써 있는 그대로 예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강포를 행하고 심문을 가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자신들도 알지 못하며 그런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여기 이사야에 써 있는 그 말씀 그대로 말입니다. 어처구니 없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지금도 구약의 하나님을 섬기며 토라를 공부하고 선지서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이미 성취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토록 똑똑하고 철저하고 유능한 유대인들이 말입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자부하고 있는 그들이 말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 그들, 아무리 보여 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그들, 아무리 기회를 주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들, 구약 시대에나 오늘날이나 그것이 그들의 모습입니다. 아니 그것은 온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며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이미 피조 세계에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죄에는 심판이 있으며,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양심이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하나하나 성취되어 왔으며, 이제 남은 말씀도 성취되어 가고 있는데도,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이렇게 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다, 기록된 말씀 그대로 되어 가고 있는데도, 소경처럼 귀머거리처럼, 저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세상도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성취된 말씀을 그대로 알고 믿는 우리들, 와 놀랍다 이렇게 성취되었는가 감격하는 우리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의 혜택을 받은 우리들, 그러면서도 여전히 구약의 그들과 다름없는 모습이 우리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도 알고, 예수 그리스도도 알고, 구원도, 종말도, 영원한 그 나라도 알고 있는 우리들, 그런데 우리 안에서도 여전히 저들에게서 나타났던 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홍해의 사건을 경험하고서도 삼일 만에 물이 없다 불평하는 그 모습, 매일 내리는 만나를 먹으면서도 만나 외에는 먹을 것이 없다 불평하는 그 모습,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 하면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그 모습, 구원 받았다 하는 우리들에게도 나타나는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구약 시대도 그렇고, 신약 시대도 그렇고,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도 그렇고, 심지어 구원 받았다고 하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안 되고, 아무리 보여 주어도 안 되고, 아무리 기회를 주어도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 사람입니다. 그것이 죄인된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는 회복의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저들을 어떻게 회복시키겠다 하시는가, 저들에게 말씀하는 회복이 진정으로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53장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너희는 안 되기에, 너희를 포로에서 해방하여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낸다 하여 될 것이 아니기에, 지금까지 이스라엘 역사 내내 안 되었고, 지금도 안 되고, 앞으로도 안 될 것이기에, 그래서 하나님의 종을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로 하여금 너희의 허물과 죄악을 짊어지고 속죄 제물이 되게 하여 진정한 회복과 구원을 성취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도무지 안 되기에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왜 메시아는 화려하고 힘 있는 모습으로 오셔서 새로운 나라를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받는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멸시받고 천대받는 이 길을 가셔야 했는가? 왜 그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어야 했는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되지 않는 우리 때문입니다. 못이, 가시가, 창이 그를 찌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이 그를 찔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그를 상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구약의 메시아 예언의 중심은 바로 여기 이사야 53장입니다.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셔야 하는 메시아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셔야 하는 메시아입니다.

 

회복은 그렇게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백성들과의 회복을 위해 아들 독생자를 죽이신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땅의 회복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는 회복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영원한 속박에서 해방되는 회복입니다.

 

눈 뜬 소경 되지 맙시다. 들어도 못 알아듣는 귀머거리 되지 맙시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말씀의 본질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들을 보내셔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해 이 길을 가셔야 하는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글이 길어져 다 설명할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깊이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