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7:28-30)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정말 이 말씀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사 생존자들이 어서 빨리 구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실 수 있는 주님(35절),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그의 가족들을 양 떼 같이 지켜 주시는 주님(41절),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실 수 있는 주님(14절), 바다의 ..
(시 106: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무엇이 진짜 복인가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은 주셨지만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요구하는 것, 원하는 것을 받는 것 자체가 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진짜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불행하게 살았는가 그 특징이 오늘 시편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았습니다. (7,13,21절)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들, 그들에게 베푸신 크신 사랑을 다 잊었습니다. 애굽에서 행하셨던 일, 홍해에서, 광야에서 행하셨던 모든 일들을 다 잊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
(시 105:16)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오늘 아침 질문하십니다. 무엇을 의지하고 사는가? 하나님인가? 다른 무엇인가?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람이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 체면, 자존심이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신앙이 좋아 보입니다. 말을 그럴듯하게 하면 신앙이 좋아 보입니다. 외관상으로는 잘 지어진 아름다운 집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 무너짐이 심하게 되어 버립니다...
(시 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시편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만물 가운데 운행하시며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너무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신"(1절) 하나님이십니다. 온 천지만물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높은 산, 빛과 구름과 바람.... 모두 다 하나님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산 골짜기에 졸졸졸 시냇물을 흐르게 하사(10절) 각종 들짐승이 그 물을 먹고 살게 하십니다(11절). 공중의 작은 새도(12,17절), 산양과 너구리(18절), 젊은 사자도(21절), 바다의 물고기도(25절), 다 하나님의 손길로..
(시 103:10-11)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 아침입니다. 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예수님께서 타신 나귀가 지나는 길에 깔아 놓으며 맞이하였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고난 받으러 가시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아와 맞았습니다. 하지만 출세도 아니요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길,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오직 한 길, 묵묵히 그 사명의 길을 가신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 뿐..
(시 102: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어제 밤 늦게 태어난 지 두 시간 정도 된 새 생명을 보고 왔습니다. 참으로 신비로웠습니다. 정말 작은데.... 사람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 속에서 열 달 동안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예정일이 되었는데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가족들이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나올 시간이 되니까 어김없이 태어났습니다. "정한 기한"이 되니까 열 달 동안 살던 엄마의 뱃속을 떠나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통로가 되기 위해서 수고한 한 여인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위대하다!...' 열 달 동안 생명을 품고 있느라 수고하고, 해..
(시 101: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다윗의 거룩한 소원입니다. 오직 "완전한 길"을 바라보며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겠다고 주님 앞에서 다짐하고 있는 소원입니다. 물론 다윗도 살면서 실수하였습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죄를 주님 앞에서 짓기도 하였습니다. 완전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의 중심에 "완전한 길"을 향한 거룩한 소원을 품고 살았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목동이었을 때도, 쫓겨다니는 신세였을 때도, 왕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에도, 다윗은 그런 소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나의 마음에 합한 자'(행 13:22)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시 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성실"이란 꾸준함입니다. 변함이 없고 일정한 것입니다. 한결같은 것입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이 아니라,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것이 아니라, 하다 말다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그대로인 것, 지속적인 것, 그것이 성실입니다. 성실한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변함없이 꾸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늘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늘 있는 사람,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하는 사람, 일정한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람, 꾸준한 사람, 그 사람이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실은 곧 "믿을 수 있음, faithfulness"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