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92: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시편은 너무 중요한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나타내십니다. 오늘 시편은 이들을 '의인'이라고 표현합니다. 의인의 형통함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세상에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한다고 말씀합니다(12절).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합니다(14절). 그렇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겨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뜰..
(시 91:1-2)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성도들이 살아가는 영적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 환경 가운데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영적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영적 실상을 누리는 공간입니다. 믿음으로 들어가서 누리는 공간입니다. 이 말은 믿음으로 들어가서 누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들어가면 무한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오늘 시편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아래"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시 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에 유일하게 담겨 있는 모세의 시입니다. 특별히 10절은 우리에게 자주 인용이 되는 구절입니다. 모세는 이 시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이 시편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고 배워야 했을까요? 오늘 시편을 가만히 읽어 보면 매우 안타까워하고 답답해 하는 모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큰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모세의 마음은 큰 기대와 부푼 꿈으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 89:15-18)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그들은 종일 주의 이름 때문에 기뻐하며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주는 그들의 힘의 영광이심이라 우리의 뿔이 주의 은총으로 높아지오리니 우리의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의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니이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 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즐겁게 소리 높여 찬양하며 예배할 줄 아는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복 있는 자들입니다. 항상 주님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는 자들입니다. 항상 주님 가까이서 주님만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가까이 느껴지는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기뻐..
(시 88: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어제 밤 저희 교회에 지진이 있었던 흔적입니다. 그래도 큰 피해 없이 지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진이 일어나 보니까 두 가지 모습이 발견됩니다. 위의 사진처럼, 잘 고정이 되어 있는 물건들은 지진으로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정이 되어 있지 않은 물건들은 여지없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집에도 가 보니 그렇습니다. 벽에 잘 부착해 놓은 물건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고정하지 않고 홀로 있었던 물건들은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켓의 진열대에 있던 물건들도 많이 떨어지고 깨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주님께 잘 붙어있는 사람은 바람이 불고 어려움이 닥쳐..
(시 87:1-3)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오늘 시편 87편은 짧으면서 아름다운 시입니다. 묵상해 보면 그 내용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성, 시온성을 향한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그 거룩한 산에 터전을 삼으셨습니다. 친히 임하시어 거하시는 처소를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 있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이곳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성, O city of God!"이라고 노래합니다.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특별한 성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곳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습니..
(시 86: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수없이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는 내용, 평생을 훈련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 오늘 시편에 다시 나타납니다. 다윗의 시편 전체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다윗에게는 인생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자기 앞에 하나님을 두고 사는 인생과 두지 않고 사는 인생입니다. 다윗 자신은 평생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시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16:8) 그런가 하면 어떤 인생들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
(시 85:10-11)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사랑과 진리, 의와 화평은 서로 같이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리를 주장하는 곳에는 사랑이 없이 메마르기가 쉽습니다. 의를 내세우는 곳에서는 서로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바른 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키기 위해서는 냉정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그냥 덮거나 넘어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화평하자고 예외를 둘 수도 없습니다. 공정하고 공평해야 합니다. 기준이 정확해야 합니다. 진리와 의는 절대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변하거나 타협이 가능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사랑과 화평을 내세우다 보면 진리와 의를 지켜내기가 어려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