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1:9-2:3]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15절) 이런 황홀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정말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것이 정말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 맞습니까? 아가서의 사랑의 노래가 가슴을 너무 벅차게 만듭니다. 생각할수록 조여오는 이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무슨 이론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구원론도 칭의론도 교회론도.... 무슨 “론”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실제 사랑입니다. 실제 너무 사랑스러워 말씀하시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너무 예쁘다 너무 예쁘고 예쁘다 정말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어쩜 이리 눈이 예쁘냐 비둘기..
[아 1:1-8]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5절)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인지, 노래 중의 노래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가서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에 어떤 설명을 붙이는 것 자체가 불가합니다. 이 사랑의 노래는 느껴야 합니다. 보아야 합니다. 그림이 그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주님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인데,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너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는 어떤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눈 앞에 있습니다. 생각을 하려고 해서 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항상 앞에 있습니다. 함께 생각하고 있고 함께 느끼고 있고 어딜 가..
[나 3:12-19]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8절) 앗수르(앗시리아)라는 나라는 B.C. 612년에 완전히 멸망하여 그 뒤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앗수르 나라가 마지막 멸망할 때 일어날 현상들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견고했던 성들이 무너진다 하였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견고하고 안전한 요새입니다. 누가 함부로 쳐들어지 못하는 성들입니다. 그런데 익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듯이 쉽게 무너져 버릴 것이라 말씀합니다. 성문이 적들에게 너무 쉽게 열리게 될 것이라 말씀합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 보니까 거기서 싸울 장정들이 힘없는 여인 같이 되었..
[나 3:1-11]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4절) 앗수르를 빗대어 하신 말씀입니다. 저들이 음녀와 같이 여러 나라를 미혹하여 속였다 하였습니다. 거짓으로 속이면서 결국은 포악한 방법으로 탈취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자기들의 우상을 섬기게 했습니다. 미혹을 당하지 않는 것 너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도 마지막 때에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미혹하는 자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저들을 마술에 능숙한 자, 미모의 음녀라 비유합니다. 신사적이고 매혹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귀가 솔깃하도록 달콤하게 다가와 ..
[나 1:6-15]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9절) 하나님은 사람 속에 있는 마음의 생각까지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생각까지 온전히 깨끗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네가 무엇을 꾀하느냐?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가 하려는 그것이 무엇이냐? 네 안에 숨겨 놓은 의도가 무엇이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끼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의도가 있는지, 무슨 꾀를 부리는지, 도대체 왜 저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꾀를 부린다는 것은 보통 정당치 못한 의도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동의..
[나 1:1-5]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2절) 질투하시는 하나님, 가장 강력하고 깊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얼마나 그 사랑을 외면하는지를 반증하는 표현입니다. 얼마나 자주 놓치며 살아가는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인격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대하기 보다는, 멀리 계시는 신으로, 어떤 능력자로만 여길 때가 많지 않은가 말입니다. 하나님보다는 문제 해결을 더 원하고, 그분과의 교제보다는 필요한 것 채워주시기를 더 원하면서,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일과 문제로 그분을 대하고 있을 때가 많지 않..
[몬 1:15-25]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8절)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진 빚을 대신 갚겠다 하며 한 이 말이 주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내가 대신 갚겠다 너의 빚을 내가 갚겠다 너의 불의 너의 죄 너의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 너를 얽어매고 있는 모든 상처와 아픔들 다 내가 지겠다 다 내가 갚겠다 다 내가 계산하겠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께 빚진 자들입니다. 내가 한 일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 계산을 하셨습니다. 내 대신 죄의 짐을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내 대신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이 다 계산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회개는 내가 해야 합니다. 죄를 인정하고..
[몬 1:1-14]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1절)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가 되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추천하며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그가 전에는 무익한 자였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하나님도 없었고, 언약 백성이 아니었고, 아무런 소망이 없던 자였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유익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었다. 맞지 않습니까? 오네시모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유혹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고 구습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