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6: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위기 상황입니다. 아주 급박한 상황입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인 다윗의 상황이 얼마나 급하고 위험했는지를 시작하는 첫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짜고짜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피할 곳이 주님 밖에 없다는 절박한 외침입니다. '주님 나를 좀 숨겨 주소서! 제발 나를 좀 살려 주소서! 이 절박한 상황에서 나를 좀 건져 주소서!' 막다른 상황에 이른 자의 처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시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우리는 영적 공간인 하나님의 집에 사는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으로 실재하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집입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집입니다. 그 집에서 엄청난 특권과 혜택을 받으며 사는 자들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서 보면 그 집이 보입니다. 그 집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종의 신분이 아니라 자녀의 신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현재 내 자녀들이 나와 함께 한 집에 살고 있는 것처럼, 영적 공간인 아버지 하나님의 집에서 그분의 자녀의 신분으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곧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
(시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래로 모든 사람은 삐뚤어진 상태로 태어납니다. 본질 자체가 죄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모든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입니다. 본질상 죄인이라는 증거가 자라면서 나타납니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의 증거들이 하나 둘 나타납니다. 죄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하나 둘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다는 증거가 자라면서 서서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삐뚤어져 있는 존재입니다..
(시 13: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요즘 시편을 묵상하면서 위안이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입니다. 다윗도 흔들립니다. 번민하고 근심합니다. 탄식합니다. 울부짖습니다. 다윗에게도 환난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서 중요한 또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실제로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고백처럼, 영적인 눈이 어두워 질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잠을 자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의..
(시 12: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두 마음을 갖는 것,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두 마음을 품고 사람을 대할 때 결국 드러나고 좋을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두 마음이 아니라 깊이 보면 한 마음입니다. 속마음을 겉으로 다르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거짓을 말합니다. 아첨하는 말을 합니다. 속은 그렇지 않은데 말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 말합니다. 훌륭하다 말합니다. 당신이 최고라 말합니다. 하지만 속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잠 27:6) 이렇게 말하면 다..
(시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살맛 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조리한 세상, 모순 덩어리인 세상,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하는 중에도 살맛 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도, 교회 안에도,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 안에도,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일들이 있지만 그래도 살맛 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육신, 주님이 계시는 이 마음 안에 여전히 고개를 들고 올라오는 죄성, 내 자신을 들여다 볼 때 나도 실망스러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그래도 살맛 나는 이유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가장 완벽한 기준을 가지고 계신 분, '절대 진리'요 '절대 의'가 되시는 분, 진정한 '공의'와 '정의'가 되시는 분, 공..
(시 10: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시 10: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시 10: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악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 하나님이 있으면 너에게 왜 그런 일이 생기냐? 네 하나님이 주무시나보다~~'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자자손손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없다!' 큰 소리 칩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 되고 잘 나가고 병도 안 걸리고... 그러든데... 정말 꼭 이렇..
(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저 알고 있느냐, 진실로 믿고 있느냐는 상황이 되어 보면 압니다. 그때 하는 행동을 보면 압니다. "여호와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9절). 환난을 당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요새요 피난처요 도움'이시라는 것을 그저 글로만, 지식으로만 아는 자는 하나님을 실제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다른 사람을, 다른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어려운 일, 억울한 일이 생겼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진실로 믿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만났을..